“동백나무 등 활엽수림이 방화벽 역할… 산불 강도 60% 낮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경북 울진군 초대형 산불 현장에서 산림청 진화대원들이 늦은 밤까지 화마와 싸우고 있다. 산림청 제공

■ 동해안 산불 계기로 “진화 이전에 예방 강화” 목소리

산림 37% 소나무 중심 침엽수
테라핀 등 정유물질 20% 포함
불 잘붙고 오래 지속되는 특성

농경지·발전소·마을 주변에
산림청,매년 내화수림대 확충
㏊당 임도 3.81→5.5m로 확대

대전 = 김창희 기자

‘역대 최대피해, 역대 최장기’ 등 각종 기록을 남긴 지난 3월 울진·삼척 등 동해안 지역 산불을 계기로 ‘진화’ 이전에 ‘예방’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매년 규모가 커지는 산불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불에 강한 내화수림(활엽수림)대와 안전 공간 조성, 숲 가꾸기, 임도(林道) 확대 등 체계적인 산림 관리 및 산불예방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2일 산림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림 중 37%는 소나무 중심의 침엽수림이다. 소나무에는 송진이 다량 함유돼 있는데 ‘테라핀’ 같은 정유(精油) 물질을 20% 이상 포함하고 있다. 불이 잘 붙을 뿐만 아니라 오래 지속되는 특성이 있다. 이런 정유 물질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대량의 열에너지가 발생하고 산불 확산에 기폭제 역할을 한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수종별 연소실험 결과, 참나무(활엽수)의 화염유지시간은 23초였지만, 소나무(침엽수)는 57초로 훨씬 오래 탔다.

반면 수종 갱신을 통해 불에 강한 내화수림을 조성하면 산불 강도가 60% 이상 낮아진다. 실제 지난 2019년 강원 고성산불피해지 현장조사에서 마을 수십ｍ까지 산불이 덮친 지역의 주택 등 시설물 4동이 주변에 폭 40m, 길이 40m로 조성된 활엽수 내화수림이 ‘방화벽’ 역할을 한 덕분에 피해를 모면한 사례가 확인됐다.

산림청은 2019년부터 매년 350㏊ 규모로 내화수림대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발전소 등 국가 주요시설물·도로·철도·마을·농경지·능선 주위의 숲·대형산불피해 복구대상지에 띠나 격자 모양의 ‘방화벽 숲’을 조성하는 것이다. 소나무, 잣나무 등 침엽수 단순림을 굴참나무, 황벽나무, 동백나무 등 활엽수가 섞인 혼효림(침엽수와 활엽수가 같이 살고 있는 숲)으로 바꿔준다. 최형규 산림청 산림자원과 사무관은 “대형산불이 집중되는 영동지역의 경우, 대부분 서쪽 사면에서 산불이 발생해 동쪽 해안가로 확산하는 패턴을 고려해 서쪽 사면에 내화수림대를 주로 배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불이 났을 때 차량과 인력을 투입해 효과적으로 가장 빨리 진화할 수 있는 ‘인프라’인 임도 확대도 시급한 과제다. 임도는 평상시 산림 가꾸기에 활용하는 길이지만, 산불이나 산사태 등 재난 상황에서는 인력과 장비를 투입하는 소방도로 역할을 한다. 또 산불 확산을 막는 자연 방화선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지난 울진 산불에서 소광리 금강소나무 군락지를 화마로부터 가까스로 지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불과 2년 전 개설한 임도 덕이 컸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임도개설 정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임업 선진국들은 산불 진화에 임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말 현재 ㏊당 3.81ｍ로 독일 46ｍ, 오스트리아 45ｍ, 일본 13ｍ, 캐나다 12.8ｍ 등에 비해 턱없이 적다. 환경단체들이 산림 훼손을 이유로 임도 개설을 반대하는 바람에 최근 10년간 임도 개설 길이가 6625㎞로 1991∼2000년까지 1만1375㎞의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산림청은 우선 2030년까지 5.5ｍ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잠재적 ‘불쏘시개’가 될 수 있는 과다한 고사목, 나뭇가지, 잎 등을 주기적으로 제거해주는 것도 필수적이다.

숲 가꾸기도 산불에 강한 숲을 조성하기 위해 절실한 사업이다. 나무 사이 간격을 떨어뜨리고 불필요한 나무를 없애는 솎아베기를 비롯해 가지치기, 산물 수집 등으로 안전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숲 가꾸기를 통해 나무의 밀도를 조절하면 산불이 나무 위로 순식간에 진행되는 ‘수관화(樹冠火)’를 숲의 바닥 낙엽 또는 토양층을 태우고 지나가는 ‘지표화(地表火)’로 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성용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대조 실험결과, 나무가 빽빽할수록 산불이 지나가는 속도는 1.41배 빨랐으며, 불에 타는 연소량이 3배 이상 많았다”며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이 넓을수록 산불이 커지지 않고, 지표면의 낙엽만 태우는 산불이어서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따라 산불 대형화는 세계적인 추세다. 지난 2월 유엔환경계획(UNEP)은 기후 위기로 대형산불이 지속해서 증가할 것이며, 그에 따른 산불예산의 대대적인 재편성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최근 미국, 호주,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초대형 산불이 2030년까지 14%, 2050년까지 30%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연구도 나왔다. 최병암 산림청장은 “내화수림대 조성, 임도 개설, 숲 가꾸기 확대 등 산림의 체질 개선을 통해 산불 예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