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6년만에 WHO 무대 설까…‘親中’ 사무총장에 쏠린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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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벌 포커스

- 22 ~ 26일 제네바서 ‘세계보건총회’… 초청장 발송 여부 촉각

대만, 과거 옵서버로 참여했지만 2017년부터 中 반대로 자격박탈
美·G7 등서 대만 참가 지원사격
대만도 제네바로 이미 사절 보내…방역 모범국 부각하며 지지 호소
총회서 연임운명 결정 사무총장, 서방지지 노려 ‘전향’할지 주목

베이징=박준우 특파원

세계보건기구(WHO)의 최고 의사결정회의인 제75차 세계보건총회(WHA)가 오는 22일부터 26일까지 열리는 가운데 대만의 옵서버 참가 여부를 놓고 전 세계의 이목이 개최지인 스위스 제네바에 쏠리고 있다. 중국과 대만 양안(兩岸) 간 갈등이 갈수록 첨예해지는 가운데 대만의 옵서버 참여를 반대하는 중국과 이를 지지하는 미국 간의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지는 각축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전반적으로 대만 참가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은 상황이어서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사진) WHO 사무총장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특히 본인의 연임 여부가 걸린 이번 WHA를 앞두고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이 그동안 밀월관계였던 중국과 ‘거리두기’를 하고 있어 결과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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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 의지 강한 대만, 국제사회 요구도 높아져 = 17일 대만 타이베이타임스 등에 따르면 스티븐 솔로몬 WHO 수석법률사무관은 대만의 옵서버 지위 회복을 위한 논의를 시작해 대회 개막 전까지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얼마 전 과테말라, 아이티, 온두라스 등 13개국이 대만의 참가를 WHO에 공식 요구했고 이에 대한 검토에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회의 결과가 나오면 최종 결정은 사무총장의 초청장 발송 여부에 의해 결정된다. 유엔 회원국이 아닌 대만은 WHO에서 공식 활동을 하지 못했지만 지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옵서버로 초청받아왔다. 그러나 강한 반중 정서를 표방한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집권한 뒤 2017년부터 중국의 반대로 참가를 거부당해왔다.

그러나 올해의 경우 세계 각국의 대만 참가 요구가 어느 때보다 거세지고 있다. 미국 의회는 국무부에 대만을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라고 촉구하는 내용이 포함된 법안을 통과시켰고, 조 바이든 미 대통령도 지난 16일 이에 서명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도 이날 “대만은 세계에 이익을 줄 수 있는 독특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미국 외에도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이 공동 코뮈니케에서 대만의 참가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고, 중남미 지역 국회의원들은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 앞으로 대만 가입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오우장안(歐江安) 대만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의 WHO 참여 시도가 올해 국제사회로부터 전례 없는 지지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반대로 각종 국제기구 참여에 어려움을 겪어온 대만도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적극적이다. 대만은 이미 지난 7일 리리펑(李麗芬) 위생복리부 차장(차관)을 비롯한 사절단을 제네바로 보냈다. WHO에 대한 승인이 떨어지면 바로 현지에서 대표로 참가하겠다는 의도다. 대표단은 WHO 관계자들을 만나 자국의 옵서버 참가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대만 외교부도 WHA 참가가 2350만 자국민의 염원이라는 동영상을 제작해 SNS 등을 통해 유포하고 있다. 대만은 지난 2년간 코로나19에 가장 훌륭한 대처를 한 방역 모범국으로 평가받아왔던 점을 부각시키며 옵서버 참가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국제사회 움직임에 강한 반대 의사를 보이고 있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6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의 법안 서명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미·중 3개 코뮈니케 규정을 심각하게 위반했다”며 “국제법과 국제관계의 기본 준칙에 엄중히 위배되고 중국의 내정을 난폭하게 간섭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자오 대변인은 이어 “이 법안을 이용해 대만의 국제적 공간 확장을 돕지 말라”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중·미 관계와 대만 해협의 안정이 손상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임 걸린 사무총장, 입장 바꿀까 = 최종 결정권자인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의 최근 행보가 대만에는 희망적이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지난 10일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바이러스 양태와 지금 우리가 미래에 예상하는 것을 고려할 때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지속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는 중국 전문가들과 이 문제를 논의했고, 그러한 접근 방식이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표시했다”며 “다른 전략으로 전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지난해 말에도 “중국 정부가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소재 연구실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출됐다는 가설을 깨끗이 해소하려면 완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며 “중국에 투명하고 개방적인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이는 중국과 ‘밀월관계’를 형성해왔던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의 기존 입장과는 상반된다. WHO는 2020년 초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을 최대한 늦췄고, 중국산 백신의 긴급 사용도 조기에 승인하면서 친중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었다. 또 코로나19 기원 조사에서도 중국을 발원지로 규정하지 않았고 코로나19 변이를 명명하면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이름이 연상되는 ‘크사이(Xi·시)’를 건너뛴 채 다음 알파벳인 ‘오미크론(O)’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이 자신을 전폭 지원해준 중국에 ‘보은’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이 쏟아져나왔던 것.

에티오피아 출신의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지난 2017년 중국의 지원을 업고 당선됐고, 이후 중국은 WHO 분담금을 2017년 3600만 달러(약 457억 원)에서 2020년 약 5700만 달러로 대폭 올렸다. 이뿐만 아니라 중국은 2020년 3∼4월에는 5000만 달러를 WHO에 기부했으며 그해 5월엔 시 주석이 20억 달러의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올해 연임 여부가 결정되는 사무총장 선거가 열리는 상황에서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이 무조건 중국 편만 들어줄 수 없는 형국이 됐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전임 멜레스 제나위 정부에서 보건장관으로 재직하며 독재정부에 협력한 혐의로 모국 에티오피아에서조차 외면받고 있는데, 이러한 정치적 입지도 이 같은 입장 변화에 한몫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이번 입후보 당시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이 모국인 에티오피아는 물론 중국의 추천도 받지 못하면서 미국과 서방국가의 지원을 더욱 필요로 하게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탈퇴를 운운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임 행정부와 달리 WHO 분담금 및 지원금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WHO 내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잠재우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