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 쏟아내는 미디어… ‘진리’ 추구하는 철학의 가장 위협적 경쟁자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신문과 TV가 없던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매스미디어의 폐해’는 존재했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은 가짜 뉴스를 통해 소크라테스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게티이미지뱅크

■ 서동욱의 지식카페 - (31)철학과 매스미디어

고대 그리스선 연극이 미디어의 역할 희극서 ‘불경한 자’로 묘사된 소크라테스 훗날 목숨 잃어
수많은 허구 틈에 섞인 하나의 진실은 ‘숨은그림찾기’ 수준… 정보의 홍수가 낳은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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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미디어란 텔레비전, 신문, 라디오, 잡지, 영화, 광고 등등 불특정 다수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를 뜻한다. 물론 전달되는 정보는 진실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매스미디어는 철학의 친구다. 철학(philosophy)이 ‘진실한 앎(sophia)’에 대한 ‘사랑(philos)’이라는 점에서 말이다. 철학과 매스미디어, 둘 다 진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철학이 궤변에 시달리는 것처럼, 매스미디어 역시 거짓과 경박함에 시달린다. 일찍이 시인 김수영은 현대적 삶에 불가결한 것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거짓과 경박함으로 혐오감을 주는 매스미디어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신문을 보지 마라. 신문만 보는 머리에서 무엇이 나오겠느냐!”(1961년 4월 14일 일기) 텔레비전을 통해 공해처럼 퍼져나가는 과장 광고 또는 거짓 광고의 피해자들은 늘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매스미디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악의 거짓인 ‘가짜뉴스’가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가짜뉴스가 아니더라도 매스미디어는 그것이 지닌 이상적 정신과 상관없이 진실을 으깨버리는 일을 하곤 한다.

신문과 광고가 없던 고대인들에게도 매스미디어의 폐해라 일컬을 만한 것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희극과 비극은 어떤 의미에선 매스미디어로서의 기능을 지닌다. 그리스인들에게 연극은 단순한 오락거리도, 순수한 예술작품도 아니다. 연극은 공동체의 문제를 대중에게 알리고 함께 생각해 보는 공적인 장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매스미디어와 같은 측면을 지닌다. 미디어가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가진 것처럼 연극 또한 그러한데, 아테네의 주요 사건과 인물은 연극을 통해 찬양되거나 매도되기도 했다. 가령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은 누구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가? 바로 철학자 소크라테스다. 이 희극에서 소크라테스는 젊은이에게 궤변을 가르치고 신에게는 불경한 자로 묘사된다. 이 연극이 공연된 24년 후 소크라테스는 잘 알려진 것처럼 법정에 서게 되고 결국 독약을 마시고 죽는다. 그때의 죄목이 무엇인가? 젊은이를 망치고 국가가 믿는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이뤄진 이야기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24년 전 아리스토파네스가 희극의 형태로 만든 가짜뉴스가 끈질기게 소크라테스를 따라다니며 그의 가짜 이미지를 형성하고 결국 그를 죽게 만든 죄목을 만들어 냈다고 말이다. 무서운 일이 아닌가?

아울러 우리는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비유’를 매스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동굴에 갇힌 죄수들이 있다. 이들은 평생 실제 사물이 아니라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만을 바라보며 그것을 진실로 알고 있다. 그 죄수들 가운데 하나가 사슬을 풀고 밖으로 나가 그림자가 아닌 태양 아래 있는 사물들의 진실한 세계를 목격하게 된다. 이 해방된 자는 오로지 혼자만 진실을 누리며 기뻐하는 데 그쳤을까? 그는 거짓된 세계에 살고 있는 동료 죄수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 동굴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다시 동굴의 어둠 속으로 온 그는 어둠이 눈에 익숙지 않아 더듬거리게 된다. ‘밖으로 나가 오히려 눈을 망쳐 왔군. 밖에 나가볼 가치조차 없어.’ 동료 죄수들을 이렇게 생각하며 그를 죽이려 든다.

이 비유는 은연중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운명을 가리켜 보이고 있다. 아테네인들에게 진실을 이야기했다가, 그들의 분노를 사서 독살을 당한 운명 말이다. 진실을 말한 자에 대한 이 독살은 오늘날엔 일어나지 않는가? 하이데거는 바로 매스미디어에서 이 독살의 현대적 형태를 찾는다. 그는 ‘진리의 본질에 관하여’(이기상 역)에서 말한다. “독살은 공격이나 싸움과 같은 가시적인 외적 상해에 의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독살은…… 동굴에서 사람들이 상과 명예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철학자들을 서서히 신문과 잡지,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서 유명하게 만들며 그들을 찬양할 때 일어난다.…… 이런 식으로 철학자들은 아주 소리 나지 않게 살해당하고 있다. 무해하고 위험스럽지 않은 존재로 만들어진다.” 매스미디어는 새로운 것에서 또 새로운 것을 쫓아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뭔가 진기한 구경거리를 보여주듯 철학자를 제공한다. 그리고 처음엔 흥미를 끌다가 곧 사라져 버리는 많은 것처럼 철학자는 그의 사상이 미처 이해되기도 전에 낡은 것으로 버려지고 또 잊힌다.

이런 정황은 매스미디어가 가장 현대적인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현대적 삶은 어떻게 그려질 수 있을까? ‘존재와 시간’(이기상 역)에서 하이데거는 현대적 삶의 방식으로 ‘호기심’을 꼽는다. “호기심은…… 언제나 새것과 만나는 것을 계속 바꿈으로써 생기는 동요와 흥분을 찾는다.” 또한 그는 현대적인 말하기의 방식을 ‘잡담(빈말)’이라고 이름 붙이는데, 잡담 속에선 이런 일이 일어난다. “모든 근원적인 것은 하룻밤 사이에 이미 오래전에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다듬어진다. 모든 쟁취품은 다루기 쉬운 것이 된다.” 이런 식으로 오랜 시간과 깊은 숙고를 요구하는 것들이 건성으로 다뤄지며 단순화된다. 그리하여 ‘애매함’이라는 특성이 등장한다. 애매함은 무엇이 진정한 이해에 속하는 것이고 무엇이 아닌지, 무엇이 새롭게 성취된 것이고 무엇이 낡은 것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되는 정황을 말한다. 광고가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급조된 조잡한 책도 훌륭한 것으로 등장하고, 미디어를 거치지 못하면 오랜 성찰이 담긴 독창적인 책도 그저 그런 평범한 것의 하나로 잊힌다. 애매함 속에 두 가지 가운데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사람들은 판단하지 못한다. 저러한 호기심, 잡담, 애매함은 바로 매스미디어 시대의 키워드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진실한 앎에 대한 사랑(철학)의 위협적인 경쟁자는 매스미디어일 수 있다. 철학의 경쟁자로서 미디어(전달 매체들, 상업적 선전)에 대해 들뢰즈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형이상학의 지양 혹은 철학의 죽음에 관하여 근심해본 적이 없습니다.…… 플라톤의 ‘경쟁자들’에서 차라투스트라의 익살 광대에 이르기까지 철학에는 늘 경쟁자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경쟁자는 ‘개념’이라든가 ‘창조적’이라는 말들을 흡수해가는 정보 과학, 전달 매체, 상업적 선전 등입니다.…… 이 같은 세력들 앞에서 철학은 왜소하고 외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철학이 만일 죽게 된다면, 그것은 웃다가 죽은 것일 것입니다.”(김종호 역) 미디어는 진실을 전달한다는 그 기본적인 사명에 비춰 보자면 역설적이게도, 무엇인 진정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별할 수 없게 한다는 점에서 진리를 거짓으로부터 가려내는 일을 사명으로 삼는 철학의 경쟁자다.

들뢰즈의 ‘시네마Ⅱ’(이정하 역)에서 이런 매스미디어의 암울한 상황을 잘 드러내 주는 몇몇 페이지를 발견할 수 있다. 들뢰즈는 텔레비전, 각종 디지털 매체를 통틀어 ‘전자기적 이미지’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끊임없는 메시지의 흐름” “과부하 된 뇌”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전자기적 이미지가 오가는 매스미디어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이 물음과 더불어 들뢰즈는 심각한 ‘정치적 문제’를 제기한다. “‘어떤 정보도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히틀러를 무찌르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모든 자료를 보여 주고 모든 증언을 듣게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정보를 전능하게 만드는 것(신문과 라디오, 그리고 이어 텔레비전)은 그것의 무용성 자체, 그것의 근본적 비효율성이다.…… 히틀러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정보를 뛰어넘거나 혹은 이미지를 전복시켜야 하는 것이다.” 신문과 텔레비전 등 매스미디어는 흔히 말하듯 정보의 홍수를 이룬다. 모든 자료와 그에 대한 모든 반박 자료, 그리고 수많은 관점이 공존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한 정치인에 대한 서로 극명하게 반대되는 뉴스들을 얼마나 많이 체험하는가? 매스미디어는 이 정보들을 쏟아내는 것을 미덕으로 하지, 진실에 입각해 그것을 선별하는 일에는 인색하다. 그래서 우리는 정보들 속에 진실이 있더라도 그것을 좀처럼 거짓과 구별해내지 못한다. 그것은 마치 수만 권의 허구 틈에 뒤섞여 있는 단 한 권의 진실한 기록을 찾아내는 일처럼 어렵다. 지독한 숨은그림찾기다.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는 어떤 정보 뒤에라도 계속 숨을 수 있으며, 자신의 방패가 돼 줄 정보를 계속 생산해낼 수 있다. 그렇기에 정보는 비효율적이고 무용하다고 일컬어지는 것이다. 정보의 흐름은 쇠락하지도, 몰락하지도 않는다. “정보의 쇠락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보 그 자체가 쇠락이기 때문이다.” 바로 진실로부터의 쇠락이 정보의 정체성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들뢰즈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구원……그것은 또한 정보 너머의 창조다.”

그러나 매스미디어가 사라진 세계를 꿈꿀 수 있는가? 그런 꿈은 공허하다.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진술이 어떻게 긍정적이 될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정보 흐름의 가장 기본적이고 근대적 형태인 우편배달의 초기 역사를 다루고 있는 토머스 핀천의 소설 ‘49호 품목의 경매’에서 한 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유럽의 구원은 커뮤니케이션에 달렸다.…… 유럽의 군주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이 그 군주들 모두를 조종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엔 미디어 손에 떨어진 저 커뮤니케이션의 운명을 지켜보는 눈이 필요하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용어설명

본문 중 언급된 주요 저서들 :‘존재와 시간’은 하이데거의 대표작으로, 익명적 대중 속에서 빈말, 호기심, 애매함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현대적 삶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흥미로운 내용이 그 일부를 이룬다. ‘진리의 본질에 관하여: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테아이테토스’는 하이데거의 강의록을 정리한 책으로,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통해 현대 매스미디어 상황을 분석하기도 한다. 두 권으로 된 들뢰즈의 ‘시네마’는 고전 영화와 현대영화를 각각 ‘운동’과 ‘시간’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분석하고, 마지막으로 영화를 대체하는 텔레비전 이미지 또는 디지털 이미지가 가져올 암울한 상황을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