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 유안(劉安)의 ‘회남자’ 물줄기 터서 자연 순리 따라 ‘치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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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18) 홍수와 치수

물의 神 아들인 우, 강·흙 보수
‘무너진 하늘’을 고치는데 힘써
치수의 능력이 곧 치세의 역량
탄소중립 자체가 근본적 치수책
순리에 어긋난 것 되돌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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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화권처럼 고대 중국에도 홍수 신화가 있었다. 다만 단편적으로 기술되었고 서술의 초점이 홍수의 극복에 맞춰져 있는 치수 신화가 주를 이뤄왔다. 이를테면 이러했다. 2100여 년 전에 편찬된 ‘회남자’라는 고전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옛날 하늘을 떠받치고 있던 사방의 네 기둥이 부서져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졌다. 불길은 맹렬하게 타올랐고 큰물이 져서 멈추지 않았다. 이에 여와가 다섯 빛깔의 돌을 구워 하늘을 깁고 자라의 다리를 잘라 하늘을 받치는 네 기둥을 다시 세웠다. 흑룡을 죽여 지상을 구원하고 갈대의 재를 반죽해 큰물을 막았다. 하늘이 기워지고 사방의 기둥이 바로 세워지자 큰물이 멈추었고 땅 위가 평안해졌으며 사나운 용들이 죽어 백성들이 살 수 있게 되었다.”

이 신화의 주된 서사는 이를테면 노아의 홍수같이, 진노한 신이 타락한 인간을 정죄하기 위해 홍수를 일으켰다는 식의 서술이 아니다. 홍수의 원인이나 양상 등에 대한 서술보다는 무너진 하늘을 보수한다, 갈라진 땅을 메운다와 같이 홍수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서사의 골자를 이루고 있다. 신화답게 주인공도 여와라는 신적 존재로 설정되었고, 그가 홍수를 극복해가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홍수 자체보다는 치수에 무게중심이 놓인 서술이다.

신화적 존재이자 성군의 대명사인 우는 이러한 맥락에서 부각된 치수의 영웅이었다. 그는 물의 신인 곤의 아들이었다. 곤은 큰물이 져서 물결이 하늘에까지 닿게 되자 최고 신인 천제의 명을 기다리지 않고 식양이라는 하늘의 자산을 훔쳐 홍수를 막았다. 식양은 ‘스스로 숨 쉬는 흙’이라는 뜻으로, 필요에 따라 저절로 커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는 천제의 보물이었다. 천제는 이 사실을 알고는 불의 신 축융에게 명해 곤을 죽였다. 그렇게 죽임을 당한 곤의 몸에서 3년 만에 우가 태어났다.

시간이 흘러 순임금 시절이 되었다. 그때 공공이라는 신이 홍수를 일으켜 물이 산꼭대기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자 순임금이 우를 시켜 홍수를 다스리게 하니, 우는 강줄기를 세 갈래로 나누어 흐르게 하고 거대한 호수 다섯 개를 파서 물을 빼냈다. 물의 흐름을 막고 있던 큰 산을 쪼개 흐름을 텄고 뭇 하천이 동해로 흘러들도록 물길을 냄으로써 홍수를 다스렸다. 기록에 의하면 우가 한참 치수를 하고 있을 때 하늘이 거북 등에 치수의 요결을 담은 그림을 우에게 보내줬고, 우는 이를 참고해 치수에 성공했다고 한다.

낙수라는 강에서 거북이 떠올라 우에게 전해줬다고 해 ‘낙서(洛書)’라고 불리는 이 그림은 하늘과 땅의 운행과 변화의 원리를, 그러니까 자연의 순리를 형상화한 것이었다. 우는 이를 토대로 치수를 해 반복되는 홍수로부터 백성을 구제했고, 이를 인정받아 순임금으로부터 천자 자리를 물려받았다. 자연의 순리대로 치수할 줄 아는 능력이 순리에 입각해 세상을 다스려가는 능력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치수의 능력이 곧 치세의 역량이었음이다.

우의 치수 신화는 우가 자연의 순리에 따랐기에 치수에 성공할 수 있었음을 일러준다. ‘맹자’에 보면 백규라는 이가 자신이 우보다 치수를 잘한다며 자랑하자 맹자가 이를 단호히 부정하는 대목이 나온다. 맹자의 논리는 우는 ‘물의 도’를 따라서 치수했지만 백규는 이웃 나라로 물이 흘러들게 했을 따름이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물의 도를 따랐다”에 대해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는 “물의 본성을 따름”이라고 풀이했다. 자연의 순리를 따라 치수한다는 관념의 철학적 해석인 셈이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물을 다스린다는 치수의 근본이념에 의거한다면 오늘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은 이상기후 같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알고 있던 자연의 순리라는 것이 한창 붕괴되고 있으니 말이다. 결국 순리와 어긋난 바들을 다시 순리로 되돌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요청된다. 이를테면 탄소중립 같은 환경보호책이 실은 그 자체로 근본적 치수책이라는 뜻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