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식의 시론>金여사 목에 방울 달기

  • 문화일보
  • 입력 2022-09-19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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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주필

등잔 밑 리스크 없앴던 메르켈
21세기 최고 정치지도자 평가
국민 신뢰가 국정 동력의 원천

尹대통령 부인 구설 위험 수위
문제 자체보다 대응이 더 문제
비리 예방 백신은 투명과 정직


지난해 12월 퇴임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00년대 가장 걸출한 정치지도자로 꼽힌다. 16년 재임하면서 ‘녹슨 전차’ 독일을 ‘유럽의 기관차’로 부흥시키고, 국제 위상도 획기적으로 높였다. 정권을 4번 창출해 임기를 다 채우고 명예 퇴임한 것도 유례없는 기록이다. 인내·경청 리더십과 탁월한 용인술 등이 이를 가능케 했지만, 철저한 공사(公私) 구분으로 ‘등잔 밑 리스크’를 없앤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화학 교수인 남편은 2005년 취임식은 물론 2연임, 3연임 행사에도 불참했다. 2017년 4번째 취임식 때만 고령의 장모(2019년 별세)를 모시고 뒤편 멀찍이서 지켜봤다. 이탈리아에서 가족 휴가를 가졌을 때 메르켈은 총리 전용기, 남편은 사비로 저가 항공을 이용했다. 형제자매도 거의 노출되지 않아 지난해 “메르켈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라는 기사가 보도됐을 정도다. ‘핵관’은 있지만, 호가호위와는 거리가 멀다. 장관 시절부터 30년 가까이 보좌했던 비서실장(베아테 바우만)과 홍보비서관(에바 크리스티안젠)이 그들인데, “정세와 민심을 분칠하지 않고(ungeschminkt) 보고한다”는 초심을 견지했다. 이러다 보니 한 번도 주변 비리가 없었고, 국민의 도덕적 신뢰는 국정 운영에 큰 도움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김건희 여사 및 처가와 관련된 구설에 시달렸다. 취임하자마자 ‘핵관 파문’이 이어졌다. 한국과 독일 정치문화를 수평 비교하기는 힘들고, 느닷없이 1년 만에 대통령이 된 사정도 있지만, 이제라도 메르켈에게서 배울 필요가 있다. 누구나 ‘장롱 속 해골’을 하나씩 갖고 있다는 서양 속담처럼 윤 대통령 가정에도 감추고 싶은 게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사적인 문제라도 국민의 관심 영역 속에 들어오면 무조건 해명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를 제대로 이끌어야 할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국민 정서에 악영향을 미치고, 태생적으로 취약한 국정 기반과 동력을 더욱 갉아먹게 된다. 여소야대 국회를 극복할 방법은 민심의 확고한 지지밖에 없다. 또, 이재명 야당 대표에게 ‘사법 리스크’ 물타기 빌미도 주게 된다. 김건희 특검법 발의가 상징적이다. 나아가 야당의 입법권 남용과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이 충돌하면서 국정 마비도 올 수 있다. 당면한 국가적 과제들을 생각하면, 역사와 후대에 죄를 짓는 일이다.

야당이 특검법에서 열거한 ‘주가 조작, 허위 경력, 뇌물성 후원’은 대통령 취임 전, 심지어 결혼 전 일들이고, 문재인 정권에서도 수사했던 만큼 정치적 스토킹 성격이 뚜렷하다. 따라서 진짜 문제는, 문제 그 자체보다 대응 방식이다. 흐리멍덩한 해명이 의문을 더 키우고, 급기야 특검법이 여론 지지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취임 뒤에 ‘관저 공사 수의계약’ 의혹이나 ‘유럽 순방 때 목걸이’ 논란 등이 계속되는 것은 더 심각한 문제다. 예산·직권 남용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입찰 스펙을 특화해 놓고 단기간에 응찰 받는 것은 입찰 부정의 고전적 수법인데, 그런 냄새도 풍긴다. 변양균 경제고문, 영빈관을 둘러싼 풍문도 예사롭지 않다.

결백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대응은 대통령 부부가 취할 방식이 아니다. 오직 증거와 법리에 따라 범죄 여부를 판단했던 ‘검사 윤석열’ 시각에서는 ‘네가 무죄를 증명하라’는 식의 황당한 요구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억울해도 결백을 입증해야 한다. 잘만 하면 전화위복이 되고, 비리 소지를 원천 차단하는 부수적 효과도 있으며, 김 여사는 더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둡고 습한 곳에는 곰팡이가 생기게 마련이다. 미국 정보공개법(FOIA) 별칭이 햇볕법(Sunshine Law)인 이유다. 박근혜 탄핵도 내밀하게 도움을 받았던 비선(秘線) 한 사람에게서 촉발됐다. 대통령실에서 김 여사 문제는 ‘언터처블’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윤 대통령의 결심이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김 여사 보좌팀을 전문가 중심으로 꾸리고, 일정을 시시콜콜 공개하며, 사소한 의문에도 과도할 만큼 소상히 대응해야 한다. 어차피 다 드러나게 돼 있다. 정직과 투명이 최고의 백신이다. 언제나 경보음을 울릴 방울을 달아야 한다. 그래서 윤 대통령도 국민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작은 구멍을 방치하면 거대한 둑도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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