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라는 쾌락은 삶의 본질” … 피아니스트의 철학적 사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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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1-04 09:13
업데이트 2022-11-04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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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평론가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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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스티븐 허프의 ‘한 번 더 피아노 앞으로’(현암사)는 지적 탐구 정신과 깊이 있는 사유를 통해 그 자신의 음악관과 교육관, 종교관 등을 가감 없이 담은 책이다. “책의 내용 대부분은 이동 중의 붕 뜬 시간에 적은 메모를 발전시킨 것”이라고 서문에 적었지만, 자신의 영역인 음악부터 건축, 미술, 문학 등 거의 모든 예술 분야를 망라하며 철학적 사색을 전개한다. 한마디로, 그 폭과 깊이가, 특히 인간에 대한 끝없는 신뢰가 인상적이다.

흥미로운 주제도 있다. ‘음악가가 연주를 하지 않거나 악보를 못 읽을 수 있을까?’ 허프는 “모든 것이 ‘음악가’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달렸다”면서 자신이 만난 사람 중에는 “악보를 읽을 줄 모르지만 내가 기꺼이 음악가로 부르는 사람이 있다”고 강조한다. 이어지는 글이다. “음악 감상은 언제나 능동적인 과정이어야 하며, 연주회에 참석해 음악을 듣고 음악에 반응하고 그곳에서 자신이 들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모두 음악가다.” 스티븐 허프가 우리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명에 속하는 이유 중, 이것보다 분명한 것은 없어 보인다.

피아노를 공부하는 후학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음대에 입학하는 소수의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들에게 “협주곡을 연습하라”는 말을 건넨다. “거의 모든 커리어가 협주곡 연주로 시작되고 협주곡 연주를 통해 자리 잡는다”는 사실만큼 분명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독주회로 좋은 반응을 얻는다 해도 결국 평판은 “오케스트라 및 지휘자와 함께 쌓게 될” 운명이란 것이 모든 피아니스트 앞에 놓인 길이다. “그래야 할 때가 오기 전에 협주곡을 배워두고, 되도록 잘 배워두라. 커리어 내내 협주곡은 여러분의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 협주곡들은 오래된 친한 친구처럼 건반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허프의 철학적 사유의 핵심은 쾌락을 다룬 대목에 등장한다. 그는 쾌락을 “인간 삶의 본질”이자 “우리 삶의 모든 움직임을 이끄는 자석”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아니 인간 역사 내내 쾌락은 제어해야 할 그 무엇이었다. 음악도 현재를 누리는 일종의 쾌락이다. 그 순간을 기억할 수는 있어도 영원히 간직할 수는 없다. 음악에 조성이 있듯 삶에도 조성, 즉 다양성이 필요한 이유가 이 때문이다. 조성(調性)은 “우리 삶의 내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쾌락과 고통 사이의 움직임”으로, 어느 한 극단으로 치우치는 것을 방지한다. “불화의 고통이 지난 뒤 찾아오는 화합의 쾌락을 욕망하고 갈구”하는 인간에게 조성이라는 말은 어쩌면 금과옥조여야 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스티븐 허프의 시선은 피아노 건반 위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을 향해 있다. 무엇보다 삶을 긍정하며 ‘살아내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한 번 더 피아노 앞으로’는 잘 보여준다. 통역과 매니저 없이도 한국 활동에 제약이 없다는 그의 연주회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한 번 더 피아노 앞으로’를 다시 꺼내 읽는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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