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사다리를 잃은 세대를 위한 판타지

  • 문화일보
  • 입력 2022-12-16 11:42
  • 업데이트 2022-12-1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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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JTBC ‘재벌집 막내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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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내게 기회가 아니라 기적이다.”

삶을 살아가며 이같이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인공 진도준(송중기)은 자신의 삶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요? 맞습니다. 게다가 진도준은 미래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과거에서 ‘제2의 삶’을 살게 된 회귀물 속 주인공이니까요.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죠. ‘그때 그 집(땅)을 샀더라면…’,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했더라면…’, ‘그 주식에 투자했더라면…’ 등등. 이런 가정법의 결론은 무엇일까요? 대부분 ‘돈을 많이 벌었을 텐데’로 끝이 납니다. “인생에서 돈이 전부가 아니다”고 외치지만, 수많은 다툼과 고민 또 온갖 비리와 범죄의 시작이 ‘돈’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죠. ‘재벌집 막내아들’은 방송 10회 만에 전국 시청률 20% 고지를 넘어섰습니다. ‘부부의 세계’와 ‘SKY캐슬’에 이어 역대 JTBC 드라마 시청률 순위 3위에 해당되는 성적이죠. 왜 대중은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걸까요? 결국 대리만족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드라마는 수많은 가정을 현실화시켰을 때 어떤 부를 축적할 수 있는지 눈앞에 보여주니까요.

미래를 알고 있는 진도준은 대선을 앞두고 지원할 후보를 골라주고, 개발 전 분당 땅을 대거 매입하죠. 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 모든 현금을 달러로 바꿔 환차익을 누리고, 역대 흥행 3위에 오른 영화 ‘타이타닉’에 투자합니다. 그가 투자한 인터넷 서점 코다브라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며 ‘아마좀담컷’으로 이름을 바꿨다는 설정은, 실제 인터넷 서점으로 시작해 현재 미국 온라인 쇼핑몰 매출 1위 기업인 아마존닷컴의 성공 신화를 각색한 거죠.

진도준은 재벌집 막내아들이지만, 원래 이 회사에서 ‘머슴’처럼 살다가 살해당한 후 환생한 인물입니다. 그런 그가 재벌 세습이 아니라, 미래의 정보를 활용해 스스로 부를 축적하고 재벌을 장악해가는 모습을 보며 대중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셈이죠. ‘재벌집 막내아들’ 이전에 ‘어게인 마이 라이프’(SBS)라는 회귀물이 있었고, 웹툰 시장에서도 ‘전지적 독자 시점’, ‘메디컬 환생’ 등 회귀를 소재로 삼은 콘텐츠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요. 이는 소위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다”고 외치는 요즘 세대의 가치관과 맞물려 있죠. 좀 더 나은 삶으로 이동할 수 있는 ‘사다리’마저 사라진 세상 속 ‘실패 선언’, 그리고 계층 이동은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야 가능하다는 판타지에 몰두하는 세태를 반영하는 듯해 못내 아쉽습니다.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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