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의 환상은 백린 중독 탓?… 의학으로 푼 고전[과학자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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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1-06 08:55
업데이트 2023-01-0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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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자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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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계몽사 축약판으로 읽은 ‘장발장’은 빵을 훔친 이야기와 은 식기를 훔쳤지만 용서받는다는 이야기로만 남아 있다. 2019년 영화를 보기 전에 민음사 판으로 ‘레미제라블’을 다시 읽으면서 두 가지 점에서 놀랐다. 하나는 소설이 매우 길고 복잡한 스토리를 품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안에 프랑스혁명기의 사회상을 처절하게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1부 주인공 팡틴이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진주처럼 고운 앞니를 뽑아서 파는 장면이다.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누군가는 앞니를 비싼 값에 사서 자기 입에 끼우겠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그런 기술이 있기나 했을까? 있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다른 사람의 치아를 이용해 현대의 임플란트 같은 시술을 했다. 이뿐만 아니라 기원전 2500년경 이집트에서는 남의 치아를 이용하여 브리지 치료를 하기도 했다. 신경과 의사 유수연은 ‘이상한 나라의 모자장수는 왜 미쳤을까’(에이도스)에서 명작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특징, 질병, 그리고 특정 사건을 의학적으로 진단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모자장수는 왜 미치광이가 되었을까? 당시 영국에서 유행하던 톱 해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수은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불 속에서 어떻게 할머니 환상을 보았을까? 당시 성냥의 주재료였던 백린에 중독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판타지 소설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운디네’라는 물의 정령이 내린 저주를 받은 사람은 잠이 드는 순간 죽게 되는가? 그런 일이 실제로 있는가? 호흡 중추가 있는 뇌간이 손상을 입거나 파킨슨병처럼 뇌 질환이 생기거나 혹은 PHOX2B 유전자에 이상이 생기면 발생하는 일이다.

책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프랑켄슈타인 같은 19세기 문학작품 속 사건을 현대 의학으로 풀어낸다. 2부는 19세기를 제외한 모든 시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증상을 현대 의사의 입장에서 새롭게 진단한다. 그렇다고 해서 의학책은 아니다. 우리가 다 아는 문학작품을 역시 우리가 들어봤음 직한 의학 상식과 연결한다.

단지 의학적으로만 풀지는 않는다. “레미제라블에서 팡틴이 이를 뽑아 판 것은 당시 프랑스 하층민들의 비참함을 극대화하는 장치이자, 다시 얻을 수 없는 치아를 내준다는 점에서 딸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라며 문학적 평을 나눈다.

문학과 지식을 재밌게 연결하는 시도는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문학과 세계사를 연결한 박신영의 두 작품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와 ‘고양이는 왜 장화를 신었을까’, 환경문제를 다룬 ‘세계 문학 속 지구 환경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모두 재밌다. 새로운 지식을 얻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조합과 편집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기 때문이다.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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