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학폭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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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1-06 11:37
업데이트 2023-01-0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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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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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追憶)과 ‘기억’(記憶)은 어떻게 다를까요? 추억의 사전적 의미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이고, 기억은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입니다. 큰 차이가 느껴지진 않죠? 하지만 대중은 정서적으로 추억을 보다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편입니다. 이는 선택의 문제인 것 같은데요.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여러 기억 중에서도 뇌리에 또렷하게 남아있는 기억을, 추억이라는 카테고리로 따로 추려 담는 거죠.

최근 배우 송혜교가 출연한 넷플릭스 ‘더 글로리’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데요. 넷플릭스 TV쇼 부문 랭킹 5위에 안착했고, 미국 포브스지(紙)가 이 작품과 송혜교를 극찬했죠. 이 작품의 소재는 학교폭력(학폭)인데요. 학폭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건, 비단 한국뿐만이 아닐 겁니다. 그러니 글로벌 시청자들도 이 작품에 공감을 표하는 거죠.

학폭이 가해지는 장면만큼 ‘더 글로리’가 정서적으로 섬뜩하게 느껴지는 건, 학폭이라는 도려내고 싶은 흉터를 이제 무감각하게 바라보며 복수를 다짐하는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의 처연한 대사 때문인데요.

“오늘부터 내 꿈은 너야, 우리 꼭 또 보자, 연진아” “여기까지 오는 데 우연은 단 한 줄도 없었어” “매일 생각했어 연진아, 난 너를 어디서 재회해야 할까?”

전후 사정을 모르고 이 문장을 접하면, 문동은이 절친했던 여고 동창생 박연진(임지연 분)을 추억하며 띄우는 편지 같죠. 하지만 무미건조한 톤으로 “나 지금 되게 신나”라면서 “우리 같이 천천히 말라 죽어 보자”라고 박연진에게 건넨 문동은의 한마디에는,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는 학폭의 기억을 간직한 피해자의 절절한 심경이 담겼습니다.

20년 전, 봉준호 감독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에 ‘살인의 추억’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요. ‘살인’과 ‘추억’이 병립할 수 있는 단어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살인의 피해자가 아닌, 용의자를 수사하는 ‘제3자’인 경찰이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고 외치죠.

그렇다면 학폭의 직접 피해를 당한 이의 마음은 어떨까요? 물론 그 마음이 사적(私的) 복수를 정당화시킬 순 없죠. 이에 대해 송혜교는 “너부터 일단 벌 받아. 나도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 벌 받을게. 그런 마음으로 향해가는 것 같다”고 속내를 밝혔는데요. 나의 잘못에 대한 죗값을 치르더라도 너희 잘못을 묵인할 수 없다는 처절한 심경이죠. 절대 잊히지 않는 또 다른 의미의 추억으로 똬리를 트는 학폭, 이는 결코 학창 시절 치기 어린 장난이라 할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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