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교의 시론]윤석열의 ‘따뜻한 시장’ 열정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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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3-0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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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교 정치부장

尹의 은행 공공재 언급 우려감
정부의 시장 개입 경계심 불러
규제 많으면 자유와 권리 줄어

대통령은 국가의 1호 정치인
과도한 규제는 부작용을 초래
풍요와 번영은 시장에서 창출


윤석열 대통령은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예금과 대출이자 간 마진 폭리를 취하는 은행에 대한 정부 개입을 놓고 ‘검찰에서 굴러온, 기본이 안 됐다’는 형식적 시장주의자들의 공격이 거세지만, 그는 스스로를 뼛속까지 자유주의자라고 믿는다. 그래서 지난해 5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외쳤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로 세워 위기를 극복하고 통합과 번영의 시대를 열겠다”라는 다짐은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그렇지 않다면 3·1절 기념사에서 ‘자유’를 8차례나 또 언급했을 리가 없다. 시장경제 옹호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1979년 저작 ‘선택할 자유’는 그가 항상 곁에 두고 읽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장은 윤 대통령을 의심하고 있다. 발단은 은행에 대한 ‘공공재’ 언급이었다. 윤 대통령은 1월 말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은행은 공공재 측면이 있기에 공정하고 투명한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후 학계에서는 때아닌 경제학 논쟁이 벌어졌다. “은행을 공공재라고 부른 것은 경제학 원론에도 없는 얘기”(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 경제학부 게시판)라는 비판이 나왔다. 또, “금융위기 상황에서 공적자금이 투입된 사례가 있는 만큼 공공적 성격이 있다”(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해석도 제시됐다.

윤 정부의 시장 개입 최소화를 예상했던 은행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의 담합 혐의에 대한 조사의 칼을 최근 빼 들었다. 이동통신업체들도 마찬가지로 용의 선상에 올랐다. 시장주의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정부 규제가 많을수록 경제적 자유는 줄어들고 정치적 권리마저 위협받는다. “신관치가 시작됐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공공재는 동일한 집단의 한 개인이 소비를 해도 다른 사람이 이용할 기회가 배제되지 않는 재화다. 보통 군대와 경찰 치안 행정처럼 구성원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다. 먼저 소비하면 다른 사람이 소비를 하지 못하는 사적재와는 태생이 다르다. 또, 공공재는 균일한 가격으로 제공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우리 사회의 경우 국가는 공기업을 통해 전력과 가스·상하수도 공공재를 공급한다. 과자와 식료품 등 사적재도 시장에서 돌아간다. 국가는 전체 시장 구조가 붕괴되지 않도록 만들 책임을 갖고 있다. 경제의 근간인 은행이 무너지면 국가는 부도 위기에 처한다. 이를 알고 있는 소비자들도 주로 대형은행에 자금을 맡기고 빌린다. 국내 5대 은행이 전체 18개 은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기준으로 원화 예수금이 77%, 원화 대출금은 67%에 달한다. 대형은행들이 국가가 깔아놓은 대마불사의 온돌방에서 편안하게 영업을 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1호 정치인이다. 세계는 코로나19로 경색된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돈을 마구 풀었다. 저금리 대출금이 넘쳐났고 인플레이션은 당연했다. 다음 조치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금리 인상이다. 부자들은 모두 아는 수순이다. 문제는 고금리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서민들이다. 그런데도 은행들은 돈잔치를 벌였다. 5대 은행은 2022년 이자 수익으로만 7조 원에 육박하는 돈을 벌었다. 이 중 1조3000억 원이 성과급으로 돌아갔다. 윤 대통령이 은행의 공공재적 측면을 언급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환기시킨 것은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자유주의 신념이 없어서가 아니다. 냉혹한 시장에 따뜻한 마음을 불어넣는 통치의 측면에서 봐야 한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갖는 감시자의 기능 역시 인정돼야 한다.

다만, 윤 대통령이 잊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 권력은 무엇이든 강제할 수 있다는 오만이다. 솔직히 윤 대통령이 친하게 지낸 후배 검사였던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임명자 아들의 학폭 사건을 몰랐다고 믿기는 쉽지 않다. 알고도 밀어붙였다고 보는 사람이 더 많다. 만약 그런 오만의 정책이 경제 영역에서 벌어진다면 대파탄이 펼쳐진다.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강력한 개입은 그 자체가 독(毒)이다. 개입은 절제돼야 하고 최소에 그쳐야 한다. 풍요를 가져오는 것은 국가가 아닌 시장이라는 명제는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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