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가열땐 ‘마이야르’, 당은 ‘캐러멜’ … 고소·달착지근한 향 만들어[살아있는 과학]

  • 문화일보
  • 입력 2023-03-08 09:06
  • 업데이트 2023-03-08 16:16
프린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 살아있는 과학 - 냄새의 비밀

냄새, 코 안쪽 후각 망울 거쳐
기억 관장 대뇌변연계에 전달
향 맡으면 기분도 달라지게돼


오늘은 향(香)에 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냄새의 비밀을 파헤쳐 보자. 후각은 무엇이며, 인간이 어떤 경로를 통해 향을 느끼게 되는 것일까. 맛과 향의 첫 수업에서 우리는 향이 물보다 기름에 잘 녹는 휘발성 분자라고 배웠다. 자연에는 수만 가지 향이 존재하며 인간의 후각 수용체 종류만도 400여 가지에 이른다. 맛 수용체 20∼30가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향은 그래서 단조로운 맛을 보완해 요리에서 훨씬 풍부한 풍미가 나도록 도와준다. 맛있는 냄새가 나지 않는 맛집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즐기는 다양한 요리는 복잡한 향과 깊은 맛이 함께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자연 향은 주로 식물이 천연적으로 생산한 화합물이다. 물론 사향 같은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말 못 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이 곤충이나 동물을 유혹하기 위해, 혹은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낸 화학 무기인 것이다. 동시에 식물끼리 소통하는 언어, 즉 화학 신호이기도 하다. 인간은 식물 향을 추출해 요리 재료의 악취는 줄이고 기분 좋은 냄새가 나도록 요리를 한다. 요리의 가장 중요한 2가지 공정, 가열과 발효 과정에서 향이 변하기 때문에 이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능력이 일류 요리사의 자격 요건이다.

고기나 생선의 단백질, 즉 아미노산이 당과 만나 섭씨 150도 이상의 고온을 만나면 ‘마이야르 반응’이란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수백 가지 향기 물질이 생성돼 고소하고 먹음직한 냄새가 방 안에 진동하게 된다. 빵, 스테이크, 로스팅 원두, 군고구마, 튀김의 냄새이다. 이 반응은 수분을 제거하고 설탕 등 당 성분이 있으면 더욱 촉진된다. 아미노산 없이 당류(탄수화물)만 가열하면 ‘캐러멜 반응’이 일어난다. 오징어 게임에서 달고나 뽑기를 할 때 나는 냄새이다. 달착지근한 동시에 기름, 꽃, 탄내 같은 냄새가 난다. 지방도 가열하면 특유의 고소한 향을 만든다. 향 분자는 또 기름에 잘 녹기 때문에 냄새 보존 재료로 기름이 요리에 이용되기도 한다. 서양 요리의 소스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갈비나 불고기 양념도 마찬가지 원리이다. 미용에 쓰이는 향수도 기름에 냄새를 농축한 것이다.

요리의 발효 과정 역시 향을 바꾼다. 때론 악취도 나지만 잊지 못할 홍어나 치즈의 구수한 맛과 향을 창조한다. 발효는 세균이나 효모 등 미생물과 효소를 이용해 탄수화물을 당으로 분해하고 결국 산과 알코올로 만드는 과정이다. 단백질을 분해하면 글루탐산 같은 아미노산으로 쪼개진다. 분해하면 소화하기 좋고 독특한 향이 생겨 입맛을 돋운다. 요리는 열과 발효를 이용해 말랑말랑, 쫄깃쫄깃하게 재료의 내부 구조를 바꾸고, 동시에 유혹적이고 자극적인 냄새를 풍겨 뇌의 기억 속에 콕 박히도록 탄수화물·단백질·지방의 3대 영양소를 해체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냄새를 인식하는 경로는 맛과 향의 첫 번째 수업에서 설명했었다. 우리 세포에는 ‘GPCR(G-Protein Coupled Receptor)’이란 감각 수용체, 즉 냄새 센서가 있다고. 향 분자와 수용체는 열쇠와 자물쇠처럼 서로 강하게 결합한다고 설명했다. 이 센서는 관문(關門·gate)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문이 열리고 닫히면서 칼슘과 염소 이온이 세포막을 경계로 안팎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그 문을 이온 채널이라고도 한다. 양이온과 음이온 간의 전위차가 신경에 전류를 흐르게 하고 이 전류가 뇌까지 전달돼 우리는 냄새를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냄새는 다른 4개의 감각과 달리 뇌로 직행하는 별도의 통로를 갖고 있다. 코 안쪽의 후각 망울에서 대뇌변연계로 곧장 간다. 인간이 아직 동물이었을 때 냄새는 보이지 않는 적과 사냥감을 먼저 포착하는 화학적 레이더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해마, 편도체 등으로 구성된 대뇌변연계는 학습과 기억, 공포 등 감정을 관장한다. 엄마 냄새, 어릴 적 먹던 청국장 냄새 같은 기억이 오래가는 이유이다. 향수가 우울한 기분을 활기차게 바꿀 정도로 강렬한 감정적 변화를 만드는 배경이기도 하다. 후각은 원시적, 즉각적 감각으로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한다. 시각이 분석적·이성적이라면, 후각은 종합적·감성적이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노성열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