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반도체 산단은 혁신 전쟁의 전진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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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3-1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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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일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국경을 넘어 함께 협력하던 이상주의는 퇴색하고, 기술과 자원을 놓고 대립하는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각자도생하는 ‘탈세계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러한 신냉전 구도, 자국 중심주의 세계질서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격전장이 반도체 산업이다. 특히, 미국은 반도체 생산 우위를 탈환하기 위해 집요한 기술 규제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좌절시키는 한편,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을 통한 대대적인 인센티브로 대만 TSMC와 한국의 삼성 등 세계적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다만, 수혜 기업들은 중국 신규 투자 금지, 초과이익 분배, 보육시설 확충 등 치졸한 간섭을 받아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시대의 공정무역은 찾아보기 어렵고, 세계는 철저히 자국 이익 중심이라는, 냉혹한 현실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동안 우리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 적극 뛰어들기보다는 수세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지지부진했던 정치권의 반도체 세액공제 논의에서 보듯이 메모리 반도체 1, 2위 기업을 보유했다는 경쟁 우위만 믿고 종합적인 청사진도 내놓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 15일 정부가 발표한 첨단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조성 계획은 이러한 우려를 씻고 대한민국이 글로벌 무대에 띄우는 도전장과 다름없다. 향후 20년 동안 300조 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단지를 조성, 우리나라가 종합 반도체 글로벌 허브가 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당장 우리 기업들에 강력한 선택지가 생긴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할 일이다. 미·중 사이에서 울며 겨자 먹기의 선택을 강요당하는 삼성, SK하이닉스와 같은 기업들이 앞으로는 신규 산단에 투자하면서, 최첨단 반도체 사업의 중심을 국내에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생산 거점에 투자할 때도 강대국의 까다로운 조건에 말리지 않고 유연하게 결정할 여지가 생긴다.

새로 조성될 반도체 국가산단은 수도권의 기존 첨단 산업 기반을 백분 활용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다. 새 단지를 중심으로 기존 대기업들의 반도체 생산단지와 판교 등지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들이 1시간여 거리 안에 묶이는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가 완성된다. 정보와 기술이 집약된 물리적 집합체는 백배의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을 미국 실리콘밸리 등 선진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국가산단에 수도권 대학과 연구소까지 결합하게 되면, 생태계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연관 혁신 산업의 성장을 유도할 ‘신의 한 수’인 셈이다. 장기적으로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혁신을 자양분으로 삼는 첨단 산업 전반을 키워 나갈 훌륭한 보금자리가 될 수 있다. 미래의 첨단 산업 중심지는 공장이 아니라, 혁신과 협업이 일어나는 장소이다.

앞으로도 산업 간 장벽을 허무는 디지털화, 인공지능(AI) 산업 혁신 속에 세계적인 첨단 기술산업 주도권 경쟁은 더욱더 치열해져 갈 것이 자명하다. 반도체 국가산단 조성은 국내 지역균형발전의 범위를 넘어서서 치열해진 세계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출발점이다. 새로운 국가산단이 혁신의 전진 기지,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가 다시 태어나는 곳으로 자리 잡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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