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충무로의 ‘몰락’을 우려할 결심

  • 문화일보
  • 입력 2023-04-2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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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5월 제76회 칸국제영화제가 열립니다. 지난해 프랑스 칸 현장에서 박찬욱 감독의 감독상, 배우 송강호의 남우주연상 수상을 직접 취재했던 터라 ‘올해도?’라는 기대가 컸는데요. 하지만 한국 영화는 경쟁 부문 진출에 실패했죠. 그래도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비경쟁)을 비롯해 홍상수 감독의 ‘우리의 하루’(감독주간), ‘화란’(주목할만한시선) 등이 초청받았으니 체면치레했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코스 요리를 먹으며 메인 디시는 ‘패싱’한 듯한 아쉬움은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니 쏟아지는 기사 제목에도 ‘경쟁 부문 진출 실패’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붙게 되는 거죠.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나 고민해보게 됩니다. 올해 칸의 부름을 받은 영화 중에서 CJ ENM, 롯데, 쇼박스, NEW 등 국내 4대 투자배급사의 이름을 찾아보기 힘든데요. 충무로를 이끌어가는 ‘형님’들이 사라졌다는 것은 한국 영화 시장의 현 주소를 보여줍니다.

‘국제영화제=예술 영화’라 분류하던 시대가 있었는데요. 하지만 요즘은 넷플릭스 등 거대 콘텐츠 기업의 자본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들이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고 있죠. 글로벌 인지도를 갖춘 감독이나 배우를 섭외하기 위해 탄탄한 자본력이 필요한데요. 4대 투자배급사들이 지갑을 굳게 닫으니, 중소 창투사들도 충무로로 향하던 돈줄을 잠가버렸습니다. 그 결과 영화 제작 편수가 크게 줄어들었고 칸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조차 마땅치 않은 상황에 직면한 거죠.

해외에서 통하는 국내 거장들도 국경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할리우드 영화 ‘미키 17’을 촬영 중이고, 박찬욱 감독은 미국 방송사 HBO 오리지널 시리즈인 ‘동조자’를 만들고 있죠. 거장들이 그리는 큰 그림을 담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자본이 필요한데요. 투자 규모를 줄인 국내 투자배급사들이 글로벌 기업들과 덩치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거장들의 엑소더스는 이제 시작이라는 거죠.

지난해 이맘때는 영화 기자들도 바빴습니다. 영화제 기간 물가가 천정부지로 솟는 칸에서 저렴한 숙소를 찾고, 숙박비를 갹출할 룸메이트를 구하기 위해 활발히 정보를 공유했죠. 하지만 올해는 휴대폰이 조용합니다. 경쟁 부문 진출작이 없는 상황에서 장기 해외 출장의 가성비가 떨어지니 현지 취재를 포기하는 매체들이 속출하는 건데요. 신작 투자가 적어 1∼2년 후에는 극장에 걸 한국 영화가 없을 것이란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의 ‘위기’를 걱정할 단계는 지났는데요. 이미 ‘몰락’의 초입에 들어섰다는 우려가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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