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단 기름 아끼려 ‘과속제한’… 1970년대 오일쇼크때 美서 법제화[기술이 지나간 자리]

  • 문화일보
  • 입력 2023-04-24 09:12
  • 업데이트 2023-08-07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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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 도로 안전 문제의 차원에서 이해되는 속도 제한 법제화는 사실 연료비 절감 차원에서 시작됐다. 이후 속도 제한을 둘러싼 정책들은 자동차의 발달과 함께 진화해왔다. 게티이미지뱅크



■ 지식카페 - 기술이 지나간 자리 - (24) 과속의 발명, 속도제한

유가 급상승하자 연방정부 89㎞/h로 제한… 유류소비 낮추지 못했지만 교통사고 사망률 절반으로 감소
평탄한 표면·완만한 곡률·적은 교통량의 獨 아우토반엔 속도제한 없어… 환경단체선 무제한 속도 정책 폐기 요구도


과속(過速). 국어사전에 따르면 ‘자동차 따위가 주행 속도를 제한 속도보다 지나치게 빠르게 함’을 의미하는데, 이 설명을 곰곰이 살펴보면 더 많은 질문이 생긴다. 자동차가 아닌 다른 탈것에도 제한 속도가 있는가? 얼마나 빠른 것이 지나치게 빠른 것인가? 그렇다면 제한 속도는 누가 어떻게 정하는가? 누구나 답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듯한 이 다소 뻔한 질문들의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과속의 역사 즉, 속도 제한의 역사를 살펴보면, 자동차와 도로 기술, 사회의 복잡한 역학 관계와 기술이 사회에 안전하게 사용되도록 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만나게 된다.

19세기 후반, 카를 벤츠가 3륜 자동차인 페이턴트 모터바겐(Patent Motorwagen)을 발명하면서 가솔린 엔진을 이용한 자동차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가솔린 자동차의 등장으로 인해 기존의 어떤 이동 수단보다 빠른 자동차가 등장하게 됐는데, 육중한 중량의 자동차가 보행자와 충돌하거나 마차 등 다른 차량과 충돌할 경우 고속에서 훨씬 더 큰 문제를 야기하므로, 속도 제한이 제정되고 법제화되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의 속도 제한은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던 영국에서 제정됐다. 1861년 영국 의회는 ‘자동추진차량법’을 제정하고, 고속도로에서는 시속 16㎞, 도시에서는 시속 8㎞로 속도 제한을 정했다. 이 법은 자동차의 속도를 규제하기 위한 최초의 법인데, 사실 이 제한 속도는 당시 대부분의 도로를 점유하고 있던 마차의 속도로 자동차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었다.

20세기에 접어들자 자동차가 가장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한 미국에서도 속도 제한이 제정되기 시작했다. 1901년 코네티컷주에서는 자동차의 속도를 시내에서는 8마일(12㎞/h)로, 시외에서는 12마일(19㎞/h)로 제한하도록 했다. 1908년 포드 자동차가 대량 생산공정을 통해 자동차 대중화의 시대를 열었지만, 이후 자동차 관련 법제의 발전은 더디기만 했는데, 1930년대까지 12개 주에는 속도 제한이 없었으며, 28개 주에서는 자동차 운전 면허증 제도조차 없었다. 법제가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었는데, 과속을 정의할 수는 있었지만, 과속을 탐지할 수 있는 적당한 방법이 없었기에, 당시의 과속 단속이란 경찰관이 어떤 차량의 시간과 거리를 계산해서 단속하는 주먹구구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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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본격적인 속도 제한의 법제화가 되기 시작한 것은 안전 문제라기보다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유 때문이었다. 1974년 미국은 최초로 연방 차원의 최고 속도 제한을 실시하는데, 이 법의 이름은 ‘긴급 고속도로 에너지 보존법’(Emergency Highway Energy Conservation Act)이었다. 1970년대 초 오일쇼크의 여파로 유가가 급상승하자, 연방정부 차원에서 자동차의 최고 속도를 89㎞/h(55mph)로 제한한 것이다. 1995년까지 유지됐던 이 법은 미국 전체의 유류 소비를 2.2%까지 낮출 것으로 기대됐지만, 실제로는 0.5%에서 1% 정도밖에 줄일 수 없었다. 그런데, 기대하지 않았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교통사고 사망률이 거의 절반으로 준 것이다. 1972년 100만 마일당 사망률은 4.28건이었는데, 10년 여년 후인 1983년에는 2.73건으로 감소했다.

이후 연료 공급과 비용에 대한 우려가 완화되면서, 속도 제한, 특히 고속도로의 속도 제한 여부는 일종의 정치적인 논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이후 훨씬 더 많은 연구가 제시되어 현재의 우리에게는 상식에 가까운 일이지만, 차량의 속도를 전체적으로 줄이는 것이 공공의 안전을 담보하는 일이라는 주장은 당시 일각의 주장이었던 반면, 고속도로는 고속 주행을 위해 설계된 곳이고 거꾸로 속도 제한을 너무 낮추지 않는 것이 공공안전에 부합한다는 의견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자동차의 속도는 운전자의 의지에 의한 것인데, 이를 정부가 나서서 규제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문제 제기이기도 했다.

1987년 미 연방정부는 연방 차원에서 속도 제한을 정하는 것을 포기하고, 각 주가 속도 제한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에 따라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 41개 주가 속도 제한을 105㎞/h(65mph)로 높였다. 이 과정에는 미 연방과 각 주 간의 알력 관계가 숨어있는데, 1974년 연방정부가 속도를 제한하기 전까지는 각 주정부 및 지방정부가 속도 제한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고, 주정부 및 지방정부들은 이 속도 제한의 권한이 연방정부로 이관된 것에 대해서 월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1987년 연방 차원의 속도 제한이 풀리기까지 다양한 방식의 문제가 제기됐는데, 1980년에는 공화당이 연방 차원의 속도 제한이 문제가 있다고 제기할 정도였고, 1981년에는 무려 33개 주에서 이 법안에 반하는 주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고속도로에서의 속도 제한은 사실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독일 고속도로의 대명사인 아우토반은 약 70%를 점하는 구간에 속도 제한이 없다. 독일 고속도로의 철학은 ‘자유시민의 자유통행’이라는 모토가 보여주듯 자유로운 주행과 고속으로의 이동을 추구하는 것인데, 이러한 철학은 고속도로의 발전 초기부터 독일의 자동차 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독일에서 일찍이 발전한 자동차 업계는 고성능 차량의 생산과 개발에 주력했고, 아우토반은 고속주행이 가능한 고성능 차량들의 성능을 보여줄 수 있는 환경으로서 기능했다. 아우토반에 속도 제한을 없앨 수 있는 이유는 사실 도로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독일의 고속도로 인프라는 평탄한 도로 표면, 완만한 곡률, 교통량이 적은 구간 등이 특징이다. 이러한 도로 환경이 아우토반 속도 정책의 기술적 기반이 된 것이다.

고성능 자동차 소유자의 꿈처럼 생각되는 외부의 시각과는 별개로, 독일 내 아우토반의 무제한 속도 정책에 대해서는 사실 다양한 반대의 시각이 있다. 독일의 환경단체들은 아우토반의 무제한 속도 정책이 ‘빠른 차들의 속도 경쟁을 부추길 뿐’ 결과적으로 환경에 나쁜 영향만을 끼칠 것이라 주장하며, 무제한 속도 정책 폐기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또 독일의 많은 연구자 역시 속도 제한을 도입하고 대부분의 차량이 일관된 속도로 주행하게 되면, 도로 정체 및 사고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2019년 독일 녹색당은 아우토반의 속도를 130㎞/h로 제한하는 법안의 입안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채택되지 못했다.

오늘날 대부분 나라에서 속도의 제한은 도로 안전 문제의 차원에서 이해된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쳐 광범위하게 진행된 개별 국가들의 연구들은 매우 일관된 결과를 보여준다. 고속도로의 속도를 높이면, 사고위험과 사고 시 치명률이 동반 상승하고, 반대로 낮추면 관련 수치가 떨어지는 결과를 보여준다. 이에 따라 속도의 제한은 운전자와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중요한 제도적인 장치로 이해됐고, 우리나라를 포함, 대부분의 나라에서 도로 안전 차원에서 속도 제한을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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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제한을 둘러싼 정책들은 자동차의 발달과 함께 진화되었고, 그 역사는 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 정책들을 정한 주요한 요인들은 지금 우리가 상식으로 알듯, 사실 단순히 안전에 대한 고려만이 아니라, 한때 유가가 그것을 정하기도 하고,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알력 싸움이 정하기도 했으며, 또 여전히 어느 곳에서는 고속도로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렇게 기술에 대한 정책을 살펴보는 것은 그 사회가 기술에 투영된 사회적 가치를 알아내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박동오 사회정보학 박사, 기술정책자문

■ 용어설명 - 오일쇼크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페르시아만 산유국들의 감산과 가격 인상으로 인해, 전 세계적인 물가 인상과 마이너스 성장을 가져온 경제적 혼란 상황. 유류파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제 유가는 2∼4배까지 급등했고, 각 국가는 이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적용했다. 오일쇼크는 자동차 배기량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등 자동차 자체의 디자인 변화에도 크게 영향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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