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요리… 분자 요리 ② ‘뉴트리노의 생활 과학’

  • 문화일보
  • 입력 2023-05-13 09:00
  • 업데이트 2023-05-1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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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선순환은 인류 문명을 풍부하게 해주는 자양분이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번 글에서 과학 분야에서 분자 생물학의 탄생과 맞추어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 요리업계의 ‘분자 요리(molecular gastronomy)’를 소개했다. 눈에 보이는 세포 단계에서 만족하던 전통 생물학을 분자와 원자 레벨로 더 쪼개어 들어가 정보 분석 이론과 결합한 분자 생물학은 생명의 신비를 이해하는 깊이를 더했다. 마찬가지로 요리의 식재료와 조리 과정을 분자 단위로 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더 맛있는 요리, 새로운 조리 방법을 찾는 분자 요리사들의 실험 정신은 21세기에 ‘모던 퀴진(modern cousine·현대 요리)’으로 가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분자 요리의 인기가 조금 뜸해진 데는 기초 과학과 응용 과학의 경계 나누기라는 미묘한 갈등이 잠재돼 있다. 분자 요리를 창안했던 두 선구자 니콜라스 크루티와 에르베 티스는 분자 요리를 진지하게 파고들어 맛있는 음식보다 재료와 조리의 과학적 매커니즘 발견에 더 집착했다.

이들은 분자 요리가 과학 지식을 요리에 응용하는 게 아니라, 부엌에서 과학 지식을 생산하는 발견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식재료와 조리 도구, 요리법 등을 통해 참신한 맛을 선보이는 기술과는 다른 순수 과학이라는 것이다. 그러자, 분자 요리로 레스토랑을 열었던 페란 아드리아 등 인기 있는 분자요리 셰프들이 반기를 들었다. 한 평론가들은 이 같은 갈등에 영국 옵저버 지에 ‘분자 요리는 죽었다’는 제목의 글을 싣기도 했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 기초 과학과 응용 과학 사이에서 오래 전부터 벌어졌던 논쟁의 하나다. 우주와 자연의 운영 법칙을 순수하게 연구하는 과학과 그 지식을 정치·경제·사회·문화·군사 등에 적용해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기술은 처음에는 서로 다른 지식체계라고 여기고 각자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았다. 그러나 과학이 실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파급력이 커질수록 둘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한 몸으로 합쳐졌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법칙이 새로운 기술을 낳을 뿐 아니라, 기술의 진보가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유도하기도 한다. 의료 분야에서 18세기 레벤후크의 현미경, 20세기 MRI와 CT의 발명이 기초 의학을 얼마나 발전시켰는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분자요리도 마찬가지다. 분자 요리를 진지한 과학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과학자와 이를 새로운 음식의 발명이라는 기술적 시각에서 접근하는 요리사의 철학은 결국 하나로 뭉칠 수 밖에 없다. 과학과 기술이 서로의 고유한 영역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발견과 발명을 공유할 때 인류 전체의 복지는 크게 향상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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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나누자면 분자 조리학은 식재료가 조리와 요리의 과정을 거치면서 식재료의 성질과 그 변화, 특정한 맛이 배가되는 요인 등을 분석하는 과학이다. 기초연구로서 거시에서 미시를 이끌어 내는 환원주의적 접근법을 고수한다. 반면, 분자조리법은 맛있는 식재료와 새로운 요리방법, 결과적으로 창의적 요리를 개발하는 기술이라 할 수 있다. 과학과 기술은 서로 자극을 주고 받으며 상호 발전한다. 분자 조리학의 원리를 바탕으로 맛있는 새 요리가 탄생하는 분자 조리법이 나온다. 또 분자 조리법이 만든 새 요리의 분자 특성을 분석해 왜 그런 맛이 나는지를 분자 조리학이 밝힌다. 이처럼 미시에서 거시, 다시 거시에서 미시로 연결되는 선순환이 요리의 발전을 이끈다. 가장 좋은 예는 새로운 맛을 선보이며 선풍적 인기를 끈 질소 아이스크림이다. 우리가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기대하는 맛은 혀끝에서 살살 녹는 부드러움이다. 특히 유지방이 풍부하고 진한 고급 아이스크림일수록 혀에서 바로 미끄러지는 듯한 감촉을 느낄 수 있다. 이 때 아이스크림을 현미경으로 가져와 들여다보면 얼음의 결정이 매우 작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아이스크림 맛은 아이스크림 조직 속 얼음 결정의 크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얼음 결정의 크기가 35㎛ 미만이면 매우 부드러운 아이스크림, 35~55㎛이면 부드러운 아이스크림, 55㎛ 이상이면 거친 맛의 아이스크림으로 판정됐다. 이처럼 거시적 현상에서 미시적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 분자 조리학의 정신이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은색 병에 담긴 액체 질소를 아이스크림 재료에 부어 순식간에 동결시키는 질소 아이스크림. 얼음 결정이 작아져 혀에 닿는 질감이 매우 부드러워진다. 게티이미지뱅크



이를 곧장 분자 조리법의 실용적 기술 정신으로 연결하면 새로운 제품이 탄생한다. 분자 조리학 덕분에 아이스크림 속 얼음 결정이 작을수록 질감이 더 부드러워진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문제는 결정을 작게 만드는 기술이다. 얼음의 결정화(結晶化)를 억제하고 결빙 시간을 단축 시킬 수 있을까? 어는 속도를 빨리 만들고 싶다면 액체 질소를 사용하면 된다. -196℃의 액체 질소로 아이스크림 재료인 우유나 생크림을 순식간에 얼리면 혀끝에 살살 녹는 매우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으로 형성된다. ‘질소 아이스크림’으로 불리는 새로운 디저트의 장르가 탄생한 것이다.

비단 분자 요리의 세계뿐 아니라 새롭고 창의적인 발견과 발명에는 편견과 오해, 반발의 장벽이 가로막고 서 있는 일이 많다. 분자 요리는 매우 보수적이고 변하지 않는 대중의 입맛에 도전해 참신한 기록을 남겼다. 마치 수천 년 변하지 않던 바둑의 정석이 인공지능 알파고의 등장 이후 새로운 AI 포석이 추가되며 더 풍부해진 것처럼.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뉴트리노 블로그 https://blog.naver.com/neutrino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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