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수컷역할 따로없어… ‘젠더 이분법’ 깨는 자연[과학자의 서재]

  • 문화일보
  • 입력 2023-06-09 09:06
  • 업데이트 2023-06-0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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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자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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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케팔로사우루스는 흔히 박치기 공룡으로 통한다. 공처럼 툭 튀어나온 두꺼운 머리뼈로 싸웠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는 수컷 파키케팔로사우루스 두 마리가 박치기하는 장면이 전시되어 있다. 도슨트가 아이들에게 묻는다. “이 두 마리는 왜 박치기를 할까요?” 아이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암컷을 차지하려고요.” 놀랍다. 이긴 수컷이 암컷을 차지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도슨트는 아이들 말에 덧붙인다. “수컷은 암컷 앞에서 힘으로, 멋으로, 노래로 뽐내요. 박치기도 그런 것이죠. 하지만 결정은 암컷이 하는 겁니다. 암컷이 그 수컷에게 관심이 없으면 소용없어요. 선택받지 못한 수컷은 다른 암컷 앞에 가서 또 박치기하면서 힘자랑을 하겠지요.” 훌륭한 대답이었다. 루시 쿡의 ‘암컷들’을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알고 있었다. “암컷이 선택권을 가진 이유는 암컷이 더 많은 것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암컷은 정자보다 훨씬 큰 난자를 제공하고 새끼가 태어난 후에도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이 논리는 암컷을 경쟁에서 배제하고 암컷에게는 선택이라는 소극적인 결정권만을 준다. 이게 지난 시대의 생물학자들의 생각이었다. 진보적인 생물학자도 마찬가지다. 왜? 다윈의 영향 아래 그대로 있었으니까.

성 역할에 대해서는 빅토리아 시대라는 한계를 가진 다윈을 극복할 때가 되었다. 그 시작은 당연히 여성들이다. 루시 쿡은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며… 공연히 많은 수컷과 교미를 거듭해 봐야 아무런 이득도 없다”고 말하는 리처드 도킨스에게 “그 말 장담할 수 있습니까?”라며 따진 제자다. 그가 쓴 ‘암컷들’은 성 역할에 대한 현대인들의 고전적인 사고를 획기적으로 바꿔준다.

책은 두더지와 하이에나 수컷에 달린 가짜 음경 같은 생생한 사례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Y염색체만 있으면 정자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존의 믿음은 Y염색체를 가진 암컷들 사례로 휴지 조각이 된다. 또 테스토스테론이 남성 호르몬이 아니라 단지 남성에게 더 명확히 발현되는 호르몬일 뿐이라는 주장은 매우 흥미롭다.

암컷의 성과 본성, 그리고 진화의 동력에 관한 현대 진화생물학의 발견은 지난 두 세기의 가부장적 프레임을 타파하며 일대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

암컷과 수컷이라는 고정된 젠더 이분법을 비판하는 책으로는 ‘진화의 무지개’(뿌리와이파리)도 들 수 있다. 진화론의 성 선택 대신 사회적 선택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면서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가 진화의 원동력이라고 주장한다.

이정모 과학저술가(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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