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깨어난 공주… “내 운명은 내가 개척한다”[어린이 책]

■ 어린이 책

깨어 있는 숲속의 공주
리베카 솔닛 글·아서 래컴 그림│홍한별 옮김│반비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워낙 유명한 이야기여서 책으로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도 이 이야기만큼은 잘 안다고 생각한다. 깊은 숲속 어느 왕국에 여자 아기가 태어났고 처음 이름을 짓는 날 그 아기는 초대받지 못한 마녀의 앙심으로 저주에 걸린다. 열다섯 살 생일에 물렛가락에 손가락을 찔리게 될 것이며 그 뒤로 백 년 동안 잠만 자게 된다는 것이다. 공주는 잠을 자고 왕자는 잠든 공주를 구출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리베카 솔닛은 이 이야기를 안다고 믿는 독자들에게 질문한다. 공주가 잠들어 있던 백 년 동안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알고 있느냐고 말이다. 그 숲에는 물레에 찔려 잠든 공주만 있었을까. 깨어있는 공주가 있었다면 그 공주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은 새로운 공주 이야기로 이어진다.

‘깨어있는 숲속의 공주’는 리베카 솔닛이 새롭게 쓴 두 번째 공주 이야기다. 전작 ‘해방자 신데렐라’에서 그는 재투성이 아가씨 신데렐라를 화덕의 불 조절에 능수능란한 실력 있는 제빵사로 다시 탄생시켰다. 이번에는 잠자는 공주 아이다의 동생이면서 그 백 년의 시간 동안 깨어있는 공주로서 열심히 살아온 ‘마야’를 발견해 여성은 운명 앞에 수동적이라는 오랜 통념을 깨뜨린다. 새로운 공주 이야기는 마법을 다르게 정의한다. 무언가를 오래 열심히 해 그것을 아주 잘하게 되면 그것은 마법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언니가 잠든 사이에 마야는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 공부에 온 힘을 쏟았고 마법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된다. 마야의 그림은 굶주린 늑대의 습격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한다. 매혹적인 그림으로 늑대를 멀리 쫓아내고 자신과 사람들의 운명을 바꾼다.

이 책에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아서 래컴의 그림이 담겨 있다. 새 글에 감쪽같이 어울리는 백 년 전 이미지의 배치가 절묘하다.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나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라거나 ‘우주의 중심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며 ‘당신이 있는 곳이 중심이라는 말’ 등이 독자에게 큰 응원이 된다. 옛이야기를 현재적으로 재해석한 저자의 의도를 섬세하게 살리면서 우리말의 재미를 살린 홍한별 번역가의 번역도 탁월하다. 64쪽, 1만7000원.

김지은 서울예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