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모래밭 같을지라도… 우리 조금만 덜 싸워보자 [주철환의 음악동네]

  • 문화일보
  • 입력 2023-07-12 09:36
  • 업데이트 2023-07-1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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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임영웅 ‘모래 알갱이’

취미가 뭐냐고 물었더니 ‘싸움’이란다. 조금 당황스럽다. 이런 답변엔 편향된 의도가 있다. 혹시 나랑 싸우자는 건가. 다른 취미는 없냐 물었더니 이번엔 노래로 답한다. ‘싸움은 내 인생에 유일한 취미인 걸 난 싸울 거야’(1996 DJ DOC ‘깡패의 천국’) 어떻게 이런 호전적인 노래가 나왔지? 미국의 래퍼 쿨리오가 같은 제목의 음반과 노래를 발표한 해가 1995년이니 아마도 영향이 없지 않았으리라. 원곡(‘Gangsta’s Paradise’)의 가사를 들어보니 이런 고백이 나온다. ‘내 삶을 돌아보니 남은 게 없다는 걸 깨달았어’(I take a look at my life and realize there’s nothing left)

인생의 황혼녘에 남은 게 ‘바람 속의 먼지’(캔자스 ‘Dust in the Wind’)뿐이라면 몹시 허망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치 있는 일터를 찾는다. 예전 입사 서류 양식엔 취미를 쓰는 항목도 있었다. 개인의 취향이 왜 궁금(필요)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고민에 빠진 지원자에게 그래도 무난한 게 독서와 음악 감상이었다. 모든 책은 양쪽에 날개가 달렸다. 불문학자 김현(1942∼1990)의 저서 제목 두 개가 독서의 빛과 그늘을 증언한다. 하나는 ‘책 읽기의 괴로움’(1984)이고, 또 하나는 ‘책 읽기의 즐거움’(1990)이다. 괴로움이 간이역이라면 깨달음은 즐거움의 종착역이다.

음악 감상도 독서의 여정과 다르지 않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냥 소리만 듣고 즐기는 게 아니라 곡에 실린 의미까지 헤아린다면, 독서가 주는 유익함에 뒤지지 않는다. 여러 번 듣고 가사를 음미하며 ‘오늘도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은 건강한가’를 점검할 때 비로소 완성형 음악 감상이 된다.

“‘내 노래가 문학일까’라고 한 번도 나 자신에게 질문한 적은 없습니다.”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2016) 수상소감에서 밝힌 내용이다. 그가 겸손하게 부인해도 대부분의 노래 속에는 문학과 음악, 자연과 인생이 공존한다. 이를테면 바람은 문학이 되기도 하고 음악이 되기도 하고 인생이 되기도 한다. 한국에선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를 ‘바람만이 아는 대답’으로 번역했지만 가사를 차분히 들여다보면 ‘그 대답은 부는 바람 속에 있네’(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다. 바람만이 답을 아는 게 아니라 ‘바람조차도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에 오히려 가깝다. 평화를 희구하는 이 노래엔 바람과 함께 모래도 등장한다.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모래밭에서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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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물음표 다음에 즉답 대신 쉼표가 필요하다. 우리는 왜 싸우는가. 사방이 싸움터로 둘러싸인 사람들을 위해 임영웅의 ‘모래 알갱이’도 선곡 리스트에 넣자. ‘나는 작은 바람에도 흩어질 나는 가벼운 모래 알갱이 그대 이 모래에 작은 발걸음을 내어요’ 무작정 앞서려 하고 무조건 이기려 하기보다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인생의 모래밭을 사이좋게 걷다 보면 ‘내 삶을 돌아보니 남은 게 없다는 걸 깨달았어’와 같은 어이없는 탄식은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작가 · 프로듀서 ·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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