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싸움 돼버린 너와 나…‘더’ 늦기 전에 ‘다’ 잘 살아보자[주철환의 음악동네]

  • 문화일보
  • 입력 2023-08-02 09:33
  • 업데이트 2023-08-0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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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에일리 ‘너나 잘해’

지금 충남 보령에선 머드(mud) 축제가 한창이다. 볼 때마다 신기하다. 어떻게 진흙을 청소 대상이 아니라 축제의 중심으로 가져올 생각을 했을까. 발상의 전환(줄여서 ‘발전’)이 지역 ‘발전’의 원동력이 된 사례다. 내친김에 오늘의 소재는 진흙으로 정한다. 둘러보면 노상 진흙탕에서 싸우는(泥田鬪狗) 이도 있고 갯벌에서 사랑을 나누는 사람도 있다. 의심과 욕심으로 만신창이가 되기도 하고 동심과 우정으로 웃음꽃을 피우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노래가 나왔나 보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신신애 ‘세상은 요지경’)

가사를 유심히 들어야 한다. ‘잘난 사람은 잘 살고 못난 사람은 못 산다’가 아니다. 저마다 자기 방식대로 산다는 뜻이다. 누가 잘났고 누가 못났는가. 테스 형(소크라테스)의 제일성(第一聲)은 ‘너 자신을 알라’다. 못난 사람은 자기 주제를 모르는 사람이다. 문제는 못난 사람이 아니라 못된 사람이다. 자기를 모르는 게 아니라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그래서 진흙탕에서 죽기 살기로 싸우다가 결국은 진흙 바닥에 드러눕는다.

유행가에 진흙이 등장한 건 1939년(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해)이다. ‘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로 시작하는 김영춘(1918∼2006)의 노래 가사(3절)를 펼쳐 보자. ‘홍도야 우지마라 굳세게 살자 진흙에 핀 꽃에도 향기는 높다 네 마음 네 행실만 높게 가지면 즐겁게 웃을 날이 찾아오리라’ 교도관 상담 노트에 씌어있음 직한 내용이다. 마음과 행실이 높으면 즐겁게 웃을 날이 찾아온다니 행복의 길은 결국 언행에 달렸다는 얘기다. 이걸 누가 모를까. 문제는 어떻게 기준을 설정하느냐인데 그건 정도(正道)와 정도(程度)의 차이를 살펴야 한다. 이상은 앞의 정도지만 현실은 뒤의 정도다. 과연 어느 정도까지 이르러야 진흙에 꽃을 피울 수 있을까.

‘홍도야 우지마라’는 원래 영화(‘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주제곡이었다. 진흙탕은 시간이 흐르면서 맑아질 수 있을까. ‘더는 화나게 만들지 마 이 싸움의 끝은 어디까지일까’ ‘진흙탕이 돼버린 내 맘 다치고 물어뜯긴 그 상처’ ‘처음관 다 달라지는 말들과 거칠어지는 너와 나’ ‘미안하지만 너나 잘해 더 늦기 전에’ 더 이상 울고불고는 없다. ‘라이 라이 라이 바이 바이 바이’(lie lie lie bye bye bye) 당찬 이 가수는 에일리, 직설적인 노래 제목은 ‘너나 잘해’다.

이 노래엔 두 개의 의미심장한 부사가 나온다. ‘더’와 ‘다’다. 여기서 실마리를 찾는 건 어떨까. ‘더’ 잘살려고 하기보다는 ‘다’ 잘살아보자는 거다. 일찍이 나는 이런 생각을 ‘더다이즘’으로 명명했다. ‘더’는 경쟁의 언어, ‘다’는 포용의 언어다. 노랫말에 나오는 ‘상처만 남기고 승자는 없었던 지겹게 반복된 너와 나의 시간’(에일리 ‘너나 잘해’)은 ‘다’가 아닌 ‘더’가 강조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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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동네에도 진흙탕 싸움이 발생한다. 최근에 불거진 피프티피프티 사태(걸그룹과 소속사의 분쟁)에는 벼락출세, 뒤통수 때리기 등의 말들이 난무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쪽 편을 들긴 어렵다. 다만 이들이 처음 만나서 이름을 지을 때의 초심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싶다. 50:50(Fifty:Fifty)엔 ‘더’(지존)가 아니라 ‘다’(공존)의 뜻이 담겼다. 공멸이냐, 공생이냐. 진흙탕이냐 머드 축제냐. 바야흐로 큐피드의 화살은 시위를 떠나 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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