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아메리카, 영혼은 아프리카… 삼바로 잊은 ‘노예의 기억’ [장은수의 도시와 문학]

  • 문화일보
  • 입력 2023-08-07 09:12
  • 업데이트 2023-08-0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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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거대한 예수상이 굽어보고 있는 브라질의 옛 수도 리우데자네이루의 전경. 아름다운 볼거리가 가득한 시내 이면엔 수도도, 전기도 없는 하층민 주거지가 있다. 빈부 격차는 이 땅의 고질이다. 게티이미지뱅크



(29) 리우데자네이루

포르투갈, 황금 찾으려 상륙
원주민 학살뒤 노예로 부려
빈민촌 파벨라 저항의 상징

1930년 혁명 신체제 들어서
산업화로 빈부격차 극심해져
꿈 잃은 여성 “난 괴물” 자조


“난 미친 듯이 일해./ 그러나 아주 조금밖에 못 벌지./ 그래서 잡일도 더 하고/ 싸구려 음식을 먹으며 살지./ 내 월급에서 0이 하나 빠졌네.”

베네지두 라세르다의 삼바 ‘내 월급에서 0이 하나 빠졌네’이다. 이 노래는 천혜의 축복받은 땅에서 고통에 시달려 온 브라질 민중의 삶을 선연히 증언한다. 브라질은 한국과 더불어 불평등이 가장 심한 선진국이다. 상위 1%가 국부를 대부분 차지하고, 2300만 극빈층은 한 달 약 6만 원 이하의 소득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극단적 양극화를 반영한 듯, 리우데자네이루(이하 ‘리우’) 역시 야누스적 풍경을 보여준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변. 게티이미지뱅크



한쪽엔 지상천국이 펼쳐진다. 구아나바라만을 끼고 펼쳐진 희고 고운 해변, 높이 약 400m에 달하는 종 모양 바위 팡지아수카르, 삼바와 보사노바가 넘실대는 유쾌한 거리,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축제 리우 카니발, 20만 명이 함께 축구를 즐길 수 있는 마라카낭 축구경기장, 인류의 상처를 모두 치유할 듯 크게 팔 벌린 코르코바도산의 거대 예수상 등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볼거리가 넘쳐난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면, 곧 인세지옥을 볼 수 있다. 악명 높은 판자촌 파벨라이다. 수도도, 전기도 없는 하층민 주거지다. 곳곳에 쓰레기 산이 솟고 여기저기 오물들이 널려 악취가 가득하다. 국가마저 포기한 곳이다. 요람에 누운 아이들이 빵빵 손가락 총을 쏘고, 10대들이 마약 거래로 용돈을 버는 곳이다. 빈부 격차는 식민 시대 이래 이 땅의 고질이다.

1500년, 투피족이 살던 핀도라마(pindorama·야자수의 땅)에 포르투갈의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이끄는 선단이 도착했다. 기록에 따르면, 그의 관심사는 금뿐이었다. “금이 있음을 알려주려는 듯, 투피족 한 사람이 선장 목걸이를 보고 손으로 육지를 가리켰다.” 분명히 오역일 테다. 그러나 현재 아마존 우림에서처럼, 탐욕에 빠진 포르투갈인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무참히 학살했다. ‘우라과이’에서 바실리우 다 가마는 노래했다. “황량한 해변엔 아직,/ 불결하고 밋밋한 핏빛 물결이 맴돌고,/ 기름진 벌거벗은 시체가 떠다니네.”

포르투갈이 가장 먼저 얻은 보물은 붉은 나무였다. 껍질 속에 붉은 속살이 있는 이 나무에서 그들은 염료를 대량 채취해 팔아 큰 이득을 보았다. 속살이 불꽃(brasa) 같다 해서 그들은 이 나무를 파우브라질(pau-brasil·브라질나무)이라 불렀다. 브라질이란 말의 기원이었다.

붉은 나무는 염료 수입국 프랑스의 관심을 끌었다. 1555년 니콜라 빌가뇽은 이 나무를 노리고, 리우 앞 무인도에 도착해서 요새를 구축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종교갈등으로 인한 내부 갈등과 원주민 문화에 관한 몰이해로 실패했다. ‘슬픈 열대’에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말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 함께 일하기보다 ‘미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같은 어리석은 논쟁으로 허송세월했다.” 파멸이 찾아왔다.

1565년 포르투갈이 프랑스인을 완전히 몰아낸 후 새로 리우를 건설했다. 그러나 17세기까지 리우는 작은 항구에 불과했다. 포르투갈은 브라질 북동부에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짓고,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데려와서 설탕을 파는 데 더 신경 썼기 때문이다. 포르투갈보다 노예 수입에 적극적이었던 나라는 없다. 1850년 금지될 때까지 브라질에 끌려온 흑인들은 350만∼400만 명에 달했다. “몸은 아메리카, 영혼은 아프리카”란 속언이 퍼질 정도였다. 이후, 흑인들은 영혼의 춤 삼바를 창조하는 등 브라질 사회의 뗄 수 없는 일부가 되었다.

브라질 경제는 16∼17세기 사탕수수, 18∼19세기 커피, 19∼20세기 고무 등 단일 작물에 주로 의존했다. 이들의 세계적 수요 변동에 따라 도시 운명이 바뀌었다. 17세기 말 사탕수수 산업이 몰락하자 농장이 있던 북동부에서 새로 금광이 발견된 남동부로 대규모 인구 이동이 일어났다. 이를 발판 삼아 리우는 날갯짓을 시작했다. 유럽으로 금을 내가는 항구 도시였던 까닭이다. 유럽 이민자, 흑인 노예, 물라토(혼혈) 등이 몰려서 인구가 폭증하고, 1763년 총독부가 옮겨오면서 리우는 브라질 중심에 올라섰다.

1808년 나폴레옹이 쳐들어왔을 때 포르투갈 왕실은 과감히 리우로 천도했다. 덕분에 리우는 유럽풍 고급 주택, 학교, 박물관, 도서관 등이 들어서면서 문화도시의 품격을 갖추었다. 1822년 브라질이 독립하자, 리우는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원주민주의’가 등장하면서 과거도 다시 쓰이기 시작했다. ‘애원의 기도’에서 혼혈 시인 공사우비우 지아스는 외쳤다. “위대한 투팡이여!/ 그들은 황금에 목말라 게걸스레 그 뒤를 쫓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밟는 땅, 그들이 약탈하는 초원과 강은/ 우리 것입니다.”

19세기 브라질은 커피의 제국이었다. 1830년대부터 브라질은 노예를 동원해 세계 제일의 커피 생산지가 되었다. 황제는 돈을 받고 농장주들한테 남작 작위를 팔았다. ‘커피 남작’은 후에 아마존 지역에 등장한 ‘고무 남작’과 더불어 정치를 지배했다. 이익을 위해 이들은 다른 나라가 속속 노예제를 폐지할 때도 버텼다. 카스트루 아우베스는 꾸짖었다. “그대여, 내게 말하라!/ 하늘 아래 이토록 끔찍한 공포가/ 올바른 일인가를.”

그러나 아랑곳없었다. 1889년 황제가 노예제 폐지에 동참하자, 대지주들은 쿠데타를 부추겨 황제를 몰아내고 브라질 공화국을 수립했다. 이들은 의회와 정부를 장악해 노골적으로 국부를 가로채고, 빈부 격차를 제도화했다. 리우 외곽에 버림받은 해방 노예, 퇴역군인, 이주자가 사는 무허가 판자촌(파벨라)이 등장한 시기도 이 무렵이었다.

파벨라란 말은 카누두스 학살 사건에서 나왔다. 카누두스는 북동부 오지에서 가톨릭 교리에 따라서 자율적, 자립적으로 생활하던 공동체 마을이었다. 1896년 정부는 이들을 왕정복고를 꾀하는 광신 집단으로 몰아붙인 후 섬멸전을 벌여 약 2만 명을 학살했다. 파벨라는 이들이 최후까지 저항하던 언덕 이름이었다.

20세기 리우는 용광로였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몰려들어 사상과 예술을 꽃피우고, 삼바와 축구를 즐겼다. 1922년 독립 100주년을 맞아 발표한 ‘식인주의 선언’에서 오스바우지 지 안드라지는 물었다. “투피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로부터 야만의 상징인 식인은 혼종성, 즉 타자를 받아들여 새로움을 창조하는 브라질 문화의 특성이 되었다. 이를 상징하는 인물이 마리우 지 안드라지의 ‘마쿠나이마’에 나오는 ‘특성 없는 영웅’ 마쿠나이마다. 마쿠나이마는 원주민 어머니를 두고 흑인으로 태어났다가, 설교 중인 수메 성인의 발자국에 고인 물에 들어간 후 백인으로 재탄생한다. 그는 다양한 인종, 언어, 문화를 먹어서 나를 채우는 투피족의 후계이다.

1930년 혁명 이후 들어선 제2공화정의 근대화도 끝내 파멜라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50년 발전을 5년에!’란 구호 아래 국가는 폭발적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빈익빈 부익부만 심해졌을 뿐 권력을 장악한 부유층은 그 과실을 나눌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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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균형 발전을 이유로 수도가 내륙 신도시 브라질리아로 옮겨갔다. 그러나 불균형은 해소되지 않고, 리우의 파벨라는 점차 넓어졌다. ‘별의 시간’에서 클라리사 리스펙토르는 빈곤에 지쳐 “저 혼자 움직이는 꼭두각시”처럼 무력하게 변한 마카베아란 여성을 보여준다. 자아마저 희미해진 그녀는 묻는다. “나는 괴물일까?” 마카베아는 별이란 뜻이다. 세 번째 집권한 룰라는 과연 파벨라를 없애고, 괴물이 된 이들에게 별의 시간을 돌려줄 수 있을까?

문학평론가

■ 용어설명 - 삼바

삼바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의 음악과 춤을 다양한 유럽풍 음악과 융합해 만든 음악이다. 특징은 4분의 2박자 리듬에 맞추어 발을 구르면서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는 데 있다. 1930년대 이후, 브라질 고유의 민족 문화 창출을 위한 정부 후원과 라디오 등 대중매체 보급에 힘입어 빠르게 확산했다. 매해 2월 말 리우데자네이루에선 세계 최대의 삼바 축제가 열린다. 보사노바는 삼바와 재즈를 결합한 장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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