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의 세상[안진용 기자의 엔터 톡]

  • 문화일보
  • 입력 2023-08-1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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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병헌·박서준이 주연을 맡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감독 엄태화)가 개봉 일주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제목의 어감과 달리, 재난 상황 속에서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로 전락한 아파트 한 채를 둘러싼 집단 이기주의와 인간성의 말살을 드러내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지켜보며 “공감한다”는 반응이 줄을 잇고 있는데요. 내 몸 하나 가로누울 집 한 칸 마련하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아파트가 갖는 상징성과 기득권 집단이 갖는 폭력성을 체감하는 탓이죠.

극 중 대지진이 발생하고, 낡은 황궁아파트 한 채만 남게 됩니다. 그러자 주민들은 하나, 둘 민낯을 드러내는데요. 아파트 주변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며 주민이 아니면 몰아내죠. 자경단을 구성해 폭력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서로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도 매서워지는데요. 황궁아파트를 비웃던 (무너져버린) 이웃 고급 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적개심은 더 큽니다. 그리고 규율을 어긴 주민의 대문에는 빨간 페인트로 표시를 남기죠. 낙인찍기입니다.

재난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을 극단적으로 표현했다지만, 이와 유사한 일은 우리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데요. 지난달에는 광주의 한 아파트가 주변에 펜스를 쳐 인근 주민의 통행을 막고, 주민의 자녀가 아니면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지 못하게 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죠. 또 다른 아파트 주민들은 공공건물을 혐오 혹은 기피 시설이라 건립을 반대하기도 했죠.

독일의 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일원으로 실무를 맡아 집행한 아돌프 아이히만은 체포된 후 “나는 권한이 거의 없는 ‘배달부’에 불과했다”면서 직분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진술했는데요. 나치에 가입하기 전 정유회사 외판원으로 일하고 아버지의 사업을 돕던 평범한 아이히만이 왜 이렇게 괴물이 됐는지 합리적으로 설명하긴 쉽지 않죠. 다만 잘못된 신념을 가진 집단의 일원이 된 것은 분명합니다.

다시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돌아가면, 황궁아파트에서 인간다움을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던 주인공 명화(박보영 분)는 “황궁아파트 사람들이 소문대로 사람을 잡아먹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각종 강력 사건이 발생하고, 언론이 가해자의 이웃과 인터뷰를 나눌 때 변조된 목소리로 노상 하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죠. 이처럼 평범함 속에서 스멀스멀 드러나는 악, 미리 알아채기도 피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 아닐까요?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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