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가 해야 할 일… “원인 찾고 따져봐라”[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문화일보
  • 입력 2023-08-21 09:16
  • 업데이트 2023-08-2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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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묻지마 범죄

여불위 ‘여씨춘추’

원인이 없는 결과 없어 무슨일이든 넘어가지 말고 의문던져 규명

군주가 철저하면 관리도 따라가 사회가 먼저 왜곡·은폐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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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묻지마 범죄’라 칭하는 것을 경찰에서는 ‘이상 동기 범죄’라고 부른다. ‘묻지마’라는 표현이 아무런 원인 없이 우발적으로 일으킨 범죄라는 인상을 쉬이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세상에 그러한 범죄는 없기에 이는 범죄의 원인을 은폐하거나 왜곡해 제2, 제3의 유사 범죄를 유발할 가능성이 큰 표현이라는 것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는 속담처럼,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과학적 진리처럼 어떤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물론 역량 부족이나 인간으로서의 한계 때문에 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할 수도 있다. 반면에 밝힐 역량이 충분함에도 그러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근본 원인은 도외시하고 부차적이거나 관련 없는 데로 원인을 돌리기도 한다.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에도 남 탓을 하고, 그도 안 되면 나도 나쁘지만 너는 더 나쁘다는 식으로 물을 탄다. 수시로 나나 너나 거기서 거기라며 양비론을 동원하기도 한다.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은 이러한 원인 은폐 내지 왜곡의 전형적 사례다. 문제는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 이러한 풍조가 널리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다. 개인부터 조직, 국가사회 차원에 이르기까지 원인을 직면할 수 있는 역량이 갈수록 저하되고 있다. ‘팩폭’이란 말이 일러주듯이 팩트의 확인이 폭력으로 다가올 정도로 진실을 마주하기를 꺼려 한다. 원인 규명 없이는 진실 규명이 불가능한 만큼 결국 우리 안에 원인을 마주할 수 있는 역량이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팩트의 확인, 달리 말해 원인의 규명은 나를, 우리를 더 강하게 빚어주는 더없이 미더운 발판이 됨에도 말이다.

물론 개인 차원에서는 원인을 마주하기가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개인의 역량은 결코 작지 않지만 사회 속 개인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생계에 쫓기기도 하고 극복되지 않는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는 개인이 하기 어려운 일일지라도 그것이 공공선의 진보를 추동하는 바라면 꼭 수행해야 한다. 이미 지나간 과거사일지라도 잘잘못을 따져 원인을 규명함으로써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이유다.

“군주의 본령을 감안하면 군주가 의심하는 것은 아무런 잘못이 아니다. 도리어 의심하지 않는 데서 잘못을 범하게 된다. 또한 알지 못한 데서 잘못하지는 않고 아는 데서 잘못을 저지른다. 따라서 설령 의심스럽지 않다고 해도, 이미 알고 있다고 해도 반드시 법도에 비추어 살펴보고 준칙에 맞추어 따져보며 이치로써 검증해야 한다.”(여씨춘추)

‘여씨춘추’는 2200여 년 전에 집필된, 중국사 최초의 통일제국인 진나라의 통치원리를 담아낸 고전이다. 이에 의하면 제국의 정점에 자리한 군주가 응당 해야 할 일은 끊임없이 살펴보고 따져보며 검증하는 것이다. 잘 모르는 바는 물론이고 이미 알고 있는 바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의문을 던져야 한다고 주문한다. 군주가 이러하면 관리들이 원인 규명을 유야무야 제쳐 둔다거나 책임의 전가 등은 시도하기 어려워진다. 개인 차원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사회 차원에선 원인 규명이 가능함에도 이를 회피하거나 은폐, 왜곡하는 행태가 시대 기풍이 되는 일을 미연에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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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시기 군주는 치자의 중심이었다. 이에 비해 오늘날 민주사회에서는 시민 개개인이 주권자로서 치자의 중심을 이룬다. 민주사회에서의 ‘나’는 사적으론 자유로운 개인이지만 공적으론 어디까지나 정치의 주역이다. ‘개인으로서의 나’가 설령 원인 규명에 소홀할지라도 ‘시민으로서의 나’는 원인 규명을 외면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무어 대단한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묻지마’ 범죄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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