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이 무서운 퓨마·삶이 두려운 여성… 종을 초월한 우정과 교감[과학자의 서재]

  • 문화일보
  • 입력 2023-09-0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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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국보 1호는 숭례문이다. 그렇다면 천연기념물 1호는?”

열 중 아홉은 ‘호랑이’라고 답한다. 정답은 대구 향산에 있는 측백나무다. 놀랍게도 호랑이는 천연기념물에 속하지도 못한다. 퀴즈에 틀린 사람들은 화를 낸다. “아니, 호랑이 정도는 천연기념물이어야 하는 것 아냐!”

심정은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야생에 한 마리도 없는데 어쩌겠는가. 그렇다면 호랑이가 가장 많은 나라는 어디일까? 미국이다. 5000마리가 넘는다. 전 세계 야생 호랑이보다도 더 많다. 6% 정도만 동물원에 살고 나머지는 테마파크, 호텔, 심지어 가정에서 살고 있다. 애완동물로 말이다.

호랑이와 사자 다음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대형 고양잇과 동물은 퓨마다. 운동화 상표라서다. 퓨마는 한때 80가지 이상의 이름으로 불렸다. 캐나다에서 아르헨티나 남단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카 도처를 누볐기 때문이다. 이젠 퓨마라는 이름만 남았다. 그만큼 자연에서는 많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작은 케이지 안에서는 꽤 많이 살고 있다.

‘나와 퓨마의 나날들’(푸른숲)의 저자 로라 콜먼은 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온갖 직업을 전전해야 했고 삶이 두려워 현실도피성 남미 여행을 떠난다. 볼리비아 여행 중 우연히 생크추어리 자원봉사자를 구한다는 전단을 보고 찾아갔다. 체류 기간에 따라 돌볼 수 있는 동물이 달라진다. 보름 정도 머물 사람에게는 새나 원숭이를 맡긴다. 퓨마를 돌보려면 최소한 30일은 머물러야 한다. 로라에게 맡겨진 퓨마는 와이라. 바람이라는 뜻이다.

책은 크게 두 줄기의 흐름을 갖고 있다. 하나는 로라와 와이라가 교감을 나누게 되는 과정이다.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만화 같은 장면은 결코 연출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생크추어리에서 일어나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사이의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재밌지만 대체로 고되다. 푸세식 화장실, 전기 없는 숙소, 끝없는 노동. 화전민이 지른 불이 산불로 번졌을 때 이들이 생크추어리를 지키기 위해 애쓰는 장면은 눈물겹다. 한 달을 있기로 했던 로라의 선택은 1년이 되고 다시 방문하기를 반복하다가 15년이 된다. 야생을 두려워하는 퓨마 와이라와 삶이 두려워 도망친 젊은 여성이 서로를 믿으며 깊은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을 읽으면서 독자는 서로 다른 종인 두 생명체가 만날 때 어떤 기적이 일어나는지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하마터면 나도 볼리비아행 비행기표를 끊을 뻔했다.

이정모 과학저술가(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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