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결국 늙어버리겠지만… 뜨거운 미소는 꼭 기억해두자[주철환의 음악동네]

  • 문화일보
  • 입력 2023-09-11 09:17
  • 업데이트 2023-09-1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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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이문세의 ‘붉은 노을’

“어쩜 넌 옛날 그대로니?” “너도 똑같아.” 할머니들이 동창회에서 주고받는 ‘거짓말’이다. 어깨너머로 듣던 아르바이트 학생이 웃는다. “옛날엔 노안이 유행이었나?” 옆자리에 앉은 손님이 은밀하게 거든다. “그 시절엔 서로 시샘하던 사이였을지도 모르죠. 나이가 든 후엔 덕담을 주고받으니 얼마나 보기 좋아요.”

미인도 노인이 된다. 이것이 연예계의 공정과 상식이다. 한때 ‘컴퓨터 미인’으로 불렸던 황신혜가 올해 환갑을 맞았다. MBC 16기(1983) 공채 탤런트니까 데뷔 40년 차다. 나무위키에 이런 설명이 나온다. “198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가 누구냐고 하면 여러 이름이 나오겠지만 1980년대를 대표하는 미녀가 누구냐고 하면 십중팔구 황신혜를 꼽는다.”

당대의 미녀를 섭외하러 그의 집까지 찾아간 적이 있다. PD의 삼고초려인 셈이다. 스타가 애를 먹일 때 PD가 속으로 하는 말이 있다. “너도 늙을 거야.” 사실 그 말은 저주가 아니라 과학이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서유석 ‘가는 세월’). 황신혜는 요즘 드라마보다 예능에 자주 출연한다. 제목을 보면 그녀의 모성애와 세월의 근면함을 느낄 수 있다. ‘엄마가 뭐길래’(TV조선), ‘엄마는 예뻤다’(MBN). 갓난아기였던 딸(이진이)은 모델 겸 배우로 성장했다. 초대전을 연 화가이기도 한데 전시회 제목들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Once upon a time: 우리는 모두 한때 아이였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인터뷰에서 딸은 이런 말도 했다. “엄마는 제가 무엇을 하든 응원해주시고 큰 힘이 돼 주신다.” 새겨들어야 할 가을의 미덕이다.

‘TV청년내각’(1994)이라는 프로그램을 연출한 적이 있다. 대학생들이 가칭 ‘희망의 나라’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일종의 수행 예능이다. 그때 출연한 대학교 1, 2학년(인턴 PD) 중에는 이미 대학생의 학부모가 된 경우도 생겼다. 나는 여전히 그들의 응원단장이다. 최근에 모자를 따로 만났는데 먼저 엄마(권보연)를 만났고 며칠 후엔 아들(김재원)을 만났다. 인생의 시간표를 채우는 여러 사례를 얘기해준 후 다음 일정이 뭐냐고 물으니 주말에 있을 응원전 연습하러 교내체육관에 간다고 했다. 그 한마디에 장벽이 무너지고 불현듯 청춘의 잔해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짧게 응원 동영상 하나만 찍어서 보내줘.” 자정 가까이 되어서야 짧은 메시지와 함께 주문한 영상 택배가 도착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말씀드린 응원 영상 보냅니다. 더 신나는 건 제가 해야 해서 못 찍었네요. 좋은 밤 되세요.”

신나서 찍을 시간조차 아까웠던 응원의 함성과 동작들이 불면의 밤과 동행했다. ‘그 세월 속에 잊어야 할 기억들이 다시 생각나면 눈 감아요 소리 없이 그 이름 불러요 아름다웠던 그대 모습 다시 볼 수 없는 것 알아요.’ 나에겐 이문세의 노래로 친숙하지만 재원이(신입생)는 빅뱅의 노래로 아는 ‘붉은 노을’이다. 이 노래를 녹음할 때 이문세는 20대의 끝자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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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신혜의 소셜미디어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가을이 온 거 같긴 한데 아직 많이 덥네요.” 라디오를 켜니 계절의 전령사 같은 노래가 흘러나온다. ‘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워요’(이문세 ‘가을이 오면’). 하지만 가을이 끝날 무렵엔 이 노래가 나올 거라 예상한다. ‘가을 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 캠퍼스 잔디 위엔 또다시 황금물결 (중략) 머물 수 없는 시절 시절 시절들’(송창식 ‘날이 갈수록’).

하루를 일 년으로 치면 붉은 노을은 가을에 해당한다. 봄은 따듯했고 여름은 뜨거웠다. 옛친구들이랑 다시 만나야겠다. 마침 황신혜의 영화데뷔작도 ‘기쁜 우리 젊은 날’(배창호 감독 1987)이다. 영화 얘기만으로도 시간이 금세 갈 듯하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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