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위기 시대, 정체는 곧 도태다[이민종의 시론]

  • 문화일보
  • 입력 2023-09-2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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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종 산업부장

한국 경제 동력 잃고 장기 침체
잠재성장률 추락 1% 고착 우려
동시다발 악재로 리스크 가중

체질 개선 없이는 정체 불가피
기술패권 밀리면 회복도 난망
산업대전환기 생존 전략 시급


문재인 정부 3년 차이던 2019년 1분기, 실물경제는 0.3%로 역성장했다. 금융위기 이후 1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당시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주요 선진국이 건실한 성장을 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경제의 버팀목인 투자, 소비, 수출 등 3대 성장엔진도 멈췄다. 실물경제와 잠재성장률이 동반 하락한 것. 당시 상황을 분석한 한 민간경제연구원 관계자가 “지금의 경제 상황도 어려운데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는 점을 뜻한다”고, 정신 차려야 한다고 언급했던 게 선명하다. 가망 없는 소득주도성장이란 돈키호테 같은 실험적 경제정책은 혹독한 후유증을 남겼다.

5년여가 흐른 지금, 지난 8월 초 한국경제연구원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내수와 수출의 동반 부진으로 인해 1.3%에 머물면서 연내 경기 회복·반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졌다고 죽비를 때렸다. “경기 반등의 효자 역할을 했던 수출도 중국 및 주요국 경기 반등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게 됨에 따라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기 힘들다”고 진단했다. 한국 잠재성장률이 점점 추락해 곧 1%대로 굳어질 것이란 점을 상기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8일 올해 하반기부터 국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5대 리스크를 제기했다. 세계 경제 피크아웃(정점 뒤 하락하는 기미), 달러의 독주, 중국 대차대조표 불황 시작, 국제 원자재가격 불안 재현, 높아지는 제조업 부진 지속 가능성이다. 프랑스 철학자 에드가 모랭이 처음 언급했고, 장클로드 융커 전 EU 집행위원장이 시리아 난민과 브렉시트 등 EU의 위기를 표현하면서 ‘복기’한 복합위기(다중위기)는 작금의 경제 상황을 이해하는 데 필수 요소가 됐다. 기후변화에 코로나19 팬데믹과 엔데믹, 장기화한 우크라이나 전쟁, 자국 우선주의와 글로벌 공급망 훼손, 고유가, 고물가, 고환율, 통화 긴축, 무역전쟁에서 촉발된 G2의 양보 없는 패권 다툼…. 세계 경제성장률을 위협하는 불안 요인은 그야말로 쉴 새 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고금리와 가계부채에 따른 소비 여력 위축 현상이 뚜렷하다. 이로 인한 성장 정체를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가 5대 수출품 목록이다. 2016년 9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를 보면 반도체,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 철강이 수출 주력품목에 편입된 기간이 평균 38년이었다. 그전에도, 2023년 9월에도 변화가 없다. 새로운 성장 모멘텀과 계기는 마련하지 못하고 특정 주력 업종에만 기댄 불안한 제조업 패턴과 흐름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국제경영학 교수인 마우로 F 기옌은 저서 ‘2030축의 전환’에서 아이폰 포장 상자에 적힌 ‘FCC’와 ‘CE’란 두 키워드로 기술 패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FCC는 미 행정부 산하 미국연방통신위원회의 기술 및 안전 승인 기준을 통과한 제품이란 의미다. CE는 EU에서 판매되는 제품에 대한 승인 표시다. 그는 “미국과 유럽이 가장 큰 시장이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의 승인만 필요하다”며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자제품에서 FCC 표기만 볼 수 있었다”고 했다. 가장 큰 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므로 모든 규칙을 정할 수 있고,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은 그런 규정을 따를 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단언했다. “2030년에는 중국과 인도가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자 시장이 될 것이라는 점에 내 모든 재산을 걸 수 있다. 그때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 포장에는 FCC, CE 외에 중국, 인도의 승인 표시도 함께 찍힐 것이다.”

산업대전환의 시대에 생존 전략을 모색해 또 다른 30년, 50년, 100년 이후까지의 먹을거리를 창출하는 일, 그리고 이를 위해 제대로 된 결기를 보여주는 일이 숙명의 과제가 됐다. 세계 최초로 16M D램을 개발한 살아있는 반도체 신화의 주역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은 “조국의 반도체 산업을 일으켜 일본을 삼켜 버리겠다”고 했었다.

변화무쌍한 경제 메커니즘에서 안주와 방심은 곧 도태를 뜻한다. 끊임없이 적자생존의 움직임을 보이는 자만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문화일보가 내일(21일) ‘문화산업포럼 2023’에서 ‘복합위기와 한국산업의 생존’을 대주제로 정하고 현 좌표를 엄정하게 진단해 보고자 하는 명료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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