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위한 선택이 지구에도 이로운가… 과학자가 던지는 윤리적 질문[과학자의 서재]

  • 문화일보
  • 입력 2023-10-06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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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폭력은 꾸준히 감소해 왔고 어쩌면 우리는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대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스티븐 핑커가 그 두꺼운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언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숫자를 들이대는 데는 도리가 없다. 적어도 인간 사이의 폭력과 차별은 줄어든 것 같다.

인간과 다른 생명, 인간과 자연 사이에도 같은 이야기가 성립할 수 있을까? 화학 분야의 탁월한 교양과학서를 여러 권 펴낸 바 있는 김병민은 새 책 ‘지구 파괴의 역사’에서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200억 마리가 넘는 닭이 A4 용지 한 장 크기의 공간에서 성장촉진제를 맞으며 사료를 먹고 있다. 이런 식으로 매년 740억 마리의 가축이 살육된다.

김병민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그가 가축이 식량의 일부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윤리적 질문을 해야 한다”면서 공리주의를 다시 서랍에서 꺼낼 것을 요구한다. 김병민은 심각한 이야기를 어려운 과학을 동원해서 재밌게 푸는 재주가 있다. 바로 독자들이 알고 있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반이 동생 알료샤에게 던지는 “이 세상에서 전쟁과 살육이 멈추고 영원한 평화가 올 방법이 있는데, 그 방법이 한 아이를 고문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같은 질문이다. 김병민은 단지 인류만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선택하면 안 된다고 한다. 공리주의는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상’이라는 결과주의의 하나인데, 거기에 인간만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책의 제목에는 ‘과학자의 시선으로 본’이라는 서술어가 작은 글씨로 붙어 있다. 김병민은 과학자의 시선으로 보기에 가능한 서른여섯 가지의 파괴 행위와 결과를 보여준다. 심각한 이야기를 건너뛰고 그냥 과학 이야기만으로도 과학 지식을 얻는 쏠쏠한 재미가 있지만 영화와 문학 같은 문화와 결합되면서 독자는 윤리적인 문제에 눈감을 수가 없다. 하여, 피곤하다.

피곤하면 “저자가 뭔데 우리에게 이런 고민을 던져!”라며 짜증 내기 쉽다. 그런데 그는 야단치지 않고 해결점을 함께 찾자고 한다. 인류 역사의 발자취에 새겨진 과학으로 우리가 미래를 위해 지금 어떤 고민을 해야 할지 살펴보자고 한다. 인류가 원자의 정체를 밝히면서 시작된 인류의 문제는 과학이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고가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과학자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우리 시민의 행동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과학의 언어가 수학이라지만, 숫자로 결론 내지 말자고 한다.

책을 덮고 생각했다. 이 책은 과학책인가 문화비평서인가? 과학자가 과학적 소재로 과학적인 태도로 썼으니 과학책이다. 그런데 김병민은 엄청난 선동가인 것 같다. 자연의 위기에 직면하고서도 무덤덤한 이들이 읽고 가슴에 불을 지르기에 딱인 책이다.

이정모 과학저술가(전 국립과천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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