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에 쏘아 올린 빔… ‘천지창조’처럼 빛나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11-14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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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문화역서울284에 설치된 백남준의 ‘시스틴 채플’이 상영되는 모습. 유승목 기자



■ 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2023’

백남준 비디오作 ‘시스틴 채플’
1993년 모습대로 서울서 첫 선
칭기즈 칸의 복권 등 2점 함께

서수진·코린스키의 토네이도
장지연의 3D 홀로그램 조각 등
첨단기술 활용한 작품들 눈길


예술과 기술은 끊임없이 서로의 영역을 탐해왔다. 예술의 미학적 본질은 변하지 않지만, 이를 표현하는 개념과 형태엔 늘 동시대 첨단기술이 담겼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또는 ‘미디어아트의 창시자’로 불리는 거장 백남준(1932∼2006)의 ‘시스틴 채플’(1993)이 그렇다. 약 500년 전 유럽 르네상스를 이끈 미켈란젤로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그린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 등 천장화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이다. 붓으로 물감을 칠하는 대신 빔프로젝터 영상을 쏘고 데이비드 보위, 존 케이지 같은 20세기를 수놓은 예술가들이 가톨릭 성인들의 자리를 대체했지만, 대작을 올려다보며 느끼는 압도감과 경외감은 똑같다.

백남준에게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안긴 이 작품은 한 달간 옛 서울역사인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볼 수 있다. 서울문화재단이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등 첨단기술에 기반한 융합예술 생태계의 현주소를 읽기 위해 마련한 서울융합예술페스티벌 ‘언폴드엑스 2023’에서다. 지난 10일부터 ‘달로 가는 정거장’을 주제로 진행 중인 전시엔 ‘시스틴 채플’을 비롯해 ‘토끼와 달’(1988), ‘칭기즈 칸의 복권’(1993)까지 백남준의 작품 3점이 나왔다. 이 중 ‘시스틴 채플’이 서울에서 관람객과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과학기술이 만들어낼 유토피아를 예술로 표현하고자 했던 백남준의 작품이 한국 근현대사에서 교류 관문 역할을 했던 곳에 설치됐단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페 랑 ‘빈 공간을 비추는 램프’, 서수진&카를로 코린스키 ‘stormchaser ii’, 장지연 ‘Uncanny Nature’.   서울문화재단 제공



‘시스틴 채플’은 옛 서울역 대합실 공간에서 상영되고 있다. 40여 대의 빔프로젝터가 미국 성조기 위에 누워 있는 누드의 여성이 소용돌이치는 모습을 4채널로 천장과 벽을 메운다. 전시를 기획한 현시원 큐레이터는 “매뉴얼이 있는 작품이라 그대로 따라 설치하지만 공간에 맞게 새롭게 설계하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작업이라 할 수 있다”며 “시대마다 작품의 디테일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데,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작품이 출품될 때 작업에 참여했던 이정선 선생이 당시와 가장 비슷하게 구현했다는 평가를 했다”고 말했다.

30여 년 전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뛰어넘어 한층 진일보한 융합예술 작품들도 볼 수 있다.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다”라고 했던 백남준의 예상과 달리 브라운관은 없지만 VR, 3D 홀로그램 등이 새로운 예술 매체가 됐다. 서수진과 카를로 코린스키가 출품한 ‘stormchaser ii’는 팬, 가습기, 워터펌프, xy 레일, 모터 등을 활용해 작은 토네이도를 만들어냈고, 공학과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작가들이 모인 사일로랩은 실타래에 실이 감기는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예술) 작품 ‘시유(時有)’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감각화했다. 이 밖에도 조각을 전공한 작가로 몰입형 매핑과 3D 홀로그램을 활용해 조각을 움직이는 형태로 만든 장지연의 ‘Uncanny Nature’를 비롯해 융·복합예술을 적극 지원하는 아트센터 나비가 추천한 박소영, 스위스 작가 페 랑 등이 선보인 예술에 기술을 더한 다채로운 작품이 소개돼 있다. 전시 관계자는 “올해는 전시 공간과 작품 수, 기간 등 역대 최대 규모로 대부분 신작으로 꾸렸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13일까지.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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