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하는 태도 그대로… ‘변하지 않는’ 그 사람이 기다려지네[주철환의 음악동네]

  • 문화일보
  • 입력 2023-11-20 08:59
  • 업데이트 2023-11-2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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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박진영 ‘체인지드 맨’

단어 하나가 그물에 걸려 물고기처럼 퍼덕이는 경우를 본다. 지금은 ‘함부로’라는 부사가 그렇다.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의 시 ‘향수’(1927)에서 각별하게 애송하는 부분이다. 함부로 쏜 화살은 어딘가에 꽂힌다. 만약 누군가의 가슴에 화살이 박힌다면? 차마 잊힐 리가 만무하다.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안 보고 안 만나면 되잖아.” ‘함부로’ 던지는 이런 조언은 해결책이 아니란 걸 알기에 컴퓨터를 끄고 시집을 편다. 헤드폰으로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이 시절의 노래를 주섬주섬 챙겨 듣는다.

‘사람은 쉽게 안 변해 (중략) 그러니까 함부로 날 아프게 아프게 하지 마.’(아이브 ‘페이백’) 오늘의 주인공은 아이브가 아니고 박진영이다. 30년 전 제작본부 사무실에서 그를 처음 보았는데 TV 속의 그는 여전히 변한 게 없는 듯하다. 적어도 내가 포착한 CSI(캐릭터·스타일·이미지)상에선 크게 바뀌지 않았다. 다만 ‘위’(위상·위치)는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한다.

지난 1일 방송된 ‘유 퀴즈 온 더 블럭’(tvN)은 흥미롭고 유익했다. 영향력 있는 연예인 3명(박진영·방시혁·유재석)을 한자리에 모은 제작진의 기획력과 추진력이 돋보였다. 감독의 역량은 대체로 캐스팅에서 드러난다. 경기장(화면)에 그 사람을 어떻게 불러내느냐. 이를테면 남진·나훈아·조용필을 한 장면 속에 끌어모을 수 있는 예능 PD라면 그 자체가 ‘인플루언서’다.

그날의 부제는 ‘운명적 만남’이었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세 사람의 관계가 ‘쇼윈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PD는 전화를 돌리다 가끔은 뜻밖의 사실을 접한다. 광고에선 서로 좋아서 죽겠다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 쇼윈도구나.” 행복한 부부가 아니라 행복해 보이는 부부였다. 나중에 법정에서 마주 보지도 않고 판사만 응시하는 사진을 보며 노래 하나가 스쳐 갔다. ‘아, 이별이 그리 쉬운가. 세월 가버렸다고 이젠 나를 잊고서 멀리 멀리 떠나가는가.’(여진 ‘그리움만 쌓이네’)

사랑한다는 건 두 가지가 확실할 때 빛을 발한다. 첫째, 그가 잘되길 바라고. 둘째, 그가 잘됐을 때 진심으로 기뻐야 한다는 것이다. 잘되길 바랄 순 있다. 그건 빈말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진짜로 (결과적으로) 상대가 잘됐을 때 기쁨이 우러난다는 건 간단치 않다. 친구와 경쟁자가 여기서 갈린다. 역사를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경쟁자인 사례도 드물게 나오는데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부자라고 단정 짓긴 어려운 노릇이다.

연예인의 솔직함은 자신감에서 나온다. 그들이 어떻게 성공했는지는 많이 알려졌고 더 조사하면 다 나온다. (아니 ‘다’ 조사하면 ‘더’ 나올 거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성공해서 행복한 게 아니라 행복해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두 사람의 ‘피아노 배틀’이 그것을 증명했다. 초점은 이렇다. 누가 더 잘 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인간적이냐. 박진영은 웃겼고 방시혁은 웃었다. 유재석은 그 사이에서 심판이 아니라 교량 역할을 했다. 역시 ‘더’(경연)보다는 ‘다’(협주)라는 단어가 힘이 세다.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더다이즘’이다) 서로 존중했고 기다렸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그 자리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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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가 부른 ‘밤의 공원’에도 ‘함부로’가 나온다. ‘함부로 겨눠보던 미래와 웃음 짓던 그대와 나.’ 박진영·방시혁·유재석 3인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시간(미래)에는 도전적이며 인간에게는 기본적인 예의와 호의가 있었다. 사람은 얼마나 바뀔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나를 바꿀 수 있을까. 궁금하다면 박진영의 신곡 ‘체인지드 맨’을 기다리자. 오늘(11월 20일) 오후 6시에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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