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러 核공세와 韓美 다키스트 아워[이미숙의 시론]

  • 문화일보
  • 입력 2023-11-24 11:50
  • 업데이트 2023-11-24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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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중러 核연대로 국제위협 증대
북핵폐기 협상도 현실성 없어
美 핵전략 바꿀 필요성 더 커져

美 핵우산은 현상유지 미봉책
동시 다발 전쟁 시 이행 어려워
전술핵배치·핵역량 확보 필요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안보 위협에 직면해 있다. 수년 내 핵탄두를 2배로 늘리려는 러시아와 중국, 북한, 이란 등 4개 적대국의 위협에 동시 대응해야 하는 상황으로, 6·25전쟁 이후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이처럼 강력한 군사적 도전을 당해본 적이 없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부 장관은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11·12월호에 실린 논문 ‘기능 장애에 빠진 슈퍼 파워(Dysfunctional Super Power)’에서 미국이 처한 안보 상황을 이렇게 비관적으로 진단하면서 정책 전환을 촉구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와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5년간 국방부 수장이었던 게이츠 전 장관의 인식은 충격적이다. 중국의 부상이 경제 위기 속에서 한풀 꺾였음에도 불구하고 북·중·러·이란 등 권위주의 독재 4국의 핵 증강이 미국 주도의 국제 안보 질서를 뒤흔든다는 평가다. 게이츠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국방력 강화를 위해 의회와 협력해야 한다고 촉구하면서 핵전략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적대국의 핵 증강에 맞서기 위해 억제 위주의 기존 핵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주문이다. 동맹국과 핵 역량을 집단적으로 키워야 한다는 암시가 깔려 있다.

조지프 윤 전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한국이 핵으로 북핵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최근 방한 때 가진 필자와의 대화에서 “북한 비핵화는 더 이상 실현 가능하지 않다”면서 “한국은 이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나아가 “한국은 협상을 통한 북핵 폐기에 집착하지 말고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나 자체 핵 개발로 남북 핵 균형을 맞춘 뒤 북한과 협상해야 한다”고도 했다.

윤 전 대표는 “개인적 견해”라고 했지만, 40년 가까이 국무부에서 일해온 커리어 외교관이 이런 주장을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최종현학술원이 ‘기로에 선 미국 외교정책’을 주제로 최근 주최한 한미 전문가 비공개회의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했다고 한다. “2년 전부터 생각이 바뀌었다”는 윤 전 대표의 상황 인식은 게이츠 전 장관의 포린 어페어스 글과 일맥상통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러, 북·러의 핵 밀착이 뚜렷해지면서 한미 양국 및 자유 진영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인식이다. 권위주의 독재국의 핵 공세가 강화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핵전략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하며, 한국도 북한 비핵화라는 신기루에 집착하지 말고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현실적 방안을 동맹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미 외교안보 주류 인사들의 권고인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초 외교·국방 업무 보고 때 “북핵이 심각해지면 자체 핵을 보유할 수 있다”고 했다. 이후 한미 정상은 한국에 대한 핵우산을 강화하는 워싱턴선언을 채택했다. 이어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의를 통해 확장억제를 3국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핵우산 강화는 현상유지책일 뿐이다. 미국 대통령이 바뀐 뒤에도 워싱턴선언이 지켜질지 미지수인 데다 국제 분쟁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져 미국이 여러 개의 전장을 감당해야 할 때 약속 이행이 힘들어질 수 있다. 미국 핵에만 의지하다간 북한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

미국이 6·25 이후 최악의 국가 안보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게이츠 전 장관의 진단은 제2차 대전 당시 영국이 처했던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와 같은 상황인 만큼 바이든 대통령이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처럼 결단을 해야 한다는 주문으로 들린다. 처칠은 1940년 독일의 유럽 침공에 맞서는 고독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영국을 살렸고 자유 진영을 지켰다. 한국도 북핵 위협으로 6·25 이후 최대 위기다. 윤 대통령은 영국 국빈방문 중 찰스 3세로부터 처칠의 연설문 모음집을 선물 받았다. 영국을 구한 처칠 같은 지도자가 되라는 응원으로 보인다.

83년 전 처칠처럼, 윤 대통령도 중·러의 지원으로 핵 증강에 나선 북한에 맞서기 위해 가장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할 국면이다. 최근 아산정책연구원과 랜드연구소는 공동보고서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제안했다. 우리 예산을 들여서라도 미국의 전술핵을 보수해 우선 사용권을 갖고, 평화를 지키기 위한 핵 능력 확보를 위해 미국과 조용히 협상을 해야 한다. 미국이 더 기능 장애에 빠지기 전에 신속하고 치열하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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