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돌아온 ‘키노’… “ ‘진지한’ 영화광들의 친구될 것”

  • 문화일보
  • 입력 2023-12-04 09:33
  • 업데이트 2023-12-04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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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최지웅 프로파간다 실장은 지난달 27일 인터뷰에서 소장하고 있는 키노 창간호(1995년 5월)와 마지막 99호(2003년 7월)를 직접 들고 왔다. 왼쪽부터 최 실장, 서희영 바른손이엔에이 MMZ 팀장, 김영우 서울독립영화제 프로그래머. 박윤슬 기자



비평 잡지, 단행본으로 재출간
지난 20년 주목받은 작품 다뤄
봉준호·박찬욱 등 인터뷰 실려

“예술영화 위상 크게 줄었지만
‘진지함’ 찾는 사람 아직 많아”



영화를 보는 행위가 의미 있는 일로 여겨지고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이른바 ‘씨네필’이 존중받던 시절이 있었다. PC 통신에 영화 토론방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비디오 가게마다 유럽 예술영화가 가득하고, 대학가엔 영화 동아리 열풍이 불던 세기말. 영화잡지 ‘키노’는 씨네필의 온상이자 동지였다. 키노 같은 씨네필 문화를 자양분 삼아 봉준호·박찬욱 감독이 나왔고 그들의 영화에 열광할 수 있었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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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가 20년 공백을 딛고 ‘키노 시네필’이란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영화 ‘기생충’을 제작한 바른손이엔에이가 만든 영화팬 커뮤니티 MMZ 주도로 기존 키노 필진이 참여하고, 8일까지 열리는 서울독립영화제도 힘을 보탰다. 시네필의 몰락 시대에 키노의 부활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바른손이엔에이 MMZ 서희영 팀장(희영)과 서울독립영화제 김영우 프로그래머(영우), 그리고 열혈 키노 독자였던 최지웅 프로파간다 실장(지웅)을 함께 만났다.

키노 시네필은 “99호에서 끝난 키노 100호를 만들어달라”(지웅)는 한 시네필의 농담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키노가 없었던 20년을 정리하는 책을 만들고, 흩어진 시네필을 다시 모아보자는 거죠.”(희영)

키노 시네필엔 최근 20년간 활약한 한국과 해외 감독들의 주요 작품에 대한 비평이 실린다.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류승완 등 주요 감독의 인터뷰도 포함됐다. 해외의 경우 아리 애스터 등 감독 11명에 대한 독자 참여 리뷰가 실리고, 여기에 더해 다른 12명 감독의 작품에 대한 외부 기고가 실린다. 박찬욱 감독의 동생인 박찬경 감독과 번역가 달시 파켓 등이 참여했다. 시중엔 내년 2월 발매될 예정이다.

서울독립영화제도 키노 시네필과 공동기획으로 올해 해외 초청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진행한다. 한국 독립영화가 주인공인 서울독립영화제로선 고민이 많았을 것. 진지한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의 자리를 확인하고 싶다는 당위적 열망이 컸다. “물론 한국영화 중요하죠. 그런데 더 큰 고민은 그 많던 관객이 어디로 갔을까였어요. 독립영화와 예술영화 관객은 겹치거든요. 관객들을 좀 더 많이 만나고 싶고, 이들의 마음이 궁금했습니다.”(영우)

키노가 없었던 20년 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시네필은 고리타분한 옛날 영화나 수면제에 가까운 예술영화를 홀로 좋아하는 어두컴컴한 존재로 전락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 영화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라진 건 주요한 변화다. 과거 “극장에서 영화를 본다는 건 시네필의 중요한 요소”(영우)였지만, 이제는 “집에서 보고, 이동할 때 보며, 배속으로 보고, 요약 영상으로 본다.”(희영) 한곳에 모이지 않고 흩어지며 시네필 간 연대도 희미해졌다. “예전엔 서점에서 키노 사는 사람을 보면 서로 인사했어요. 그런 반가운 마음이 사라진 것 같아요.”

시네필의 행태도 달라졌다. “키노를 읽으면 내가 대단한 사람같이 느껴졌다”(지웅)는 말처럼 남과 ‘다름’을 추구했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검증된 영화를 남보다 먼저 보려는 경향이 커졌다고 이들은 분석했다. “예전엔 스스로 ‘찍먹’(찍어먹다)해보는 경향이 있었는데, 지금은 믿을 수 있는 메신저가 추천한 작품만 보려 해요. 모험을 안 해요.”(희영)

GV(관객과의 대화)나 굿즈에 대한 선호도 심화됐다. “부록의 시대”(지웅)라고 할 정도다. “전문가에 대한 신뢰가 줄고, 유튜브나 네이버 같은 검색 창구만 믿는다”(영우)는 자조도 나온다. 이 시간은 창작자나 비평의 공백이기도 하다. “봉준호 ‘살인의 추억’과 박찬욱 ‘올드보이’에 열광했던 사람들이 1990년대에 키노를 보고 영화를 찾아보던 사람들이었고,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 역시 좀 더 앞서 영화에 진지하게 빠졌던 사람들”(영우)이었다는 것. “창작자와 소비자가 모두 맞물렸던 시대였어요.”

그 시절 키노가 특기할 만한 점은 러시아 예술영화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한국 상업영화를 동일 선상에서 취급했다는 점이다. 1995년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10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유럽 예술영화도 일반 대중이 볼 정도로 메인스트림(주류)이었는데, 지금은 극히 일부만 찾아서 보는 서브컬처로 바뀌었어요. 그리고 그 일부의 수도 줄었습니다.”(영우)

수가 줄고, 위상은 달라졌지만 진지한 영화와 그 영화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여전히 있다. 그게 키노 시네필이 나오는 이유, 서울독립영화제가 시네필 프로젝트와 함께하는 이유다. 키노 시네필의 의미를 재차 묻자 키노 편집장이었던 정성일 평론가의 말 ‘모든 영화는 친구가 필요하다’가 인용됐다. “모든 영화엔 친구가 필요한데, 요즘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리고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역시 대체로 외로워요. 공감할 친구가 필요합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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