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알던 ‘여자 김광석’… 이윽고 ‘부족한 사랑’도 채웠다[주철환의 음악동네]

  • 문화일보
  • 입력 2023-12-04 09:08
  • 업데이트 2023-12-04 09:19
프린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주철환의 음악동네 - 박강수 ‘가을은 참 예쁘다’

노래로 시간 여행을 떠나면 하루 해가 짧다. 시간 여행이지만 진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고단했던 그 옛날 그 자리도 결국은 행복으로 오는 정거장이었다고 인정하니 노래가 절로 나온다. ‘그땐 왜 그랬을까, 그땐 왜 몰랐을까.’(정수라 ‘어느 날 문득’)

어느새 12월이다. 시간 열차가 지나간 철길 위엔 동그라미, 가위표가 수북하다. 설레며 기다린 자국도 있고 통째로 지우고 싶은 흔적도 있다. 지금은 거울 앞에서 나에게 속삭인다.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 다 그대를 위했던 시간인데.’(이승환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

수줍던 그 소년은 체중 미달이었다. 힘을 쓰는 대신 글을 쓰는 게 취미였다. 체력장에선 눈총을 받아도 백일장에선 눈길을 끌었다. 글짓기는 제법이었지만 팔굽혀펴기는 낙제였다. 하지만 구겨진 시간에도 단풍이 든다. 흑백의 기억이 컬러 화면으로 바뀌면 어느새 창밖의 교정도 총천연색이다.

가을이 무르익은 날 교수는 학생들을 데리고 야외수업을 진행한다. 각자 포착한 가을 풍경에 짧은 문장을 입혀 전송하라 요청했다. 말하자면 SNS 시대의 신종 백일장이다. 그날 뽑힌 장원은 지금도 휴대전화에 저장 중인데 몇 번을 읽어도 새롭다. “네가 있을 뿐인데 이 가을이 좋아졌다.”

“이 가을을 모두 가지세요.” 가을이 시작될 즈음 보낸 문자에 뜻밖의 질문이 날아왔다. “근데 어떻게 가을을 가지죠?” 퍼뜩 떠오른 김광석의 노래로 답변을 대신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아무도 뵈지 않는 암흑 속에서 조그만 읊조림은 커다란 빛.’ 음반에 적힌 제목은 ‘나의 노래’인데 원래 제목은 그냥 ‘노래’(한동헌 작사·작곡)다.

TV에서 낭랑한 노랫소리가 들린다. ‘여자 김광석’이라는 별명을 가진 싱어송라이터 박강수다. ‘이분이 여기 웬일이지?’ 음악 프로에선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얼굴이다. 그런데 무려 5일(11. 13∼11. 17) 동안 매일 35분씩 자신의 무대(KBS ‘인간극장’)를 펼쳤으니 참 늦복이 크게 터졌다. 그녀의 추수감사절은 너그럽고 넉넉했다.

박강수(1973년생)는 아는 사람만 아는 가수였다. 그러나 단언컨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가수는 결코 아니다. 실력이 있고 열정이 있고 겸손과 인내가 있다. ‘그대로 기억하고 있니 어쩜 너의 마음을 하나도 잊지 않은 채로’(‘부족한 사랑’·2001) 데뷔곡에서부터 노래 바구니에 진심을 담더니 이윽고 50세의 가을을 맞았다. 부족한 사랑도 채워진 느낌이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강수는 왜 노래하는가. 2집 제목에 답변이 담겼다. ‘나의 노래는 그대에게 가는 길입니다’(2004). 그녀는 이 제목으로 책도 냈다. 노래는 길이기도 하고 길을 비추는 빛이기도 하다. 길 위에서 우물쭈물하다 가을을 놓친 사람들은 햇빛의 고마움을 모른다. 무심한 사람들은 심지어 가을이 왔다 간지도 모른다. ‘자그맣고 메마른 씨앗 속에서 내일의 결실을 바라보듯이.’(김광석 ‘나의 노래’) 오랜 시간 자신의 길을 잃지 않았기에 ‘인간극장’의 부제처럼 ‘강수 씨의 가을은 참 예쁘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