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진 ‘피의 보복’에 짙어진 ‘확전 우려’ … 중재가 안먹힌다[Global Focus]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넉 달째로 접어든 가운데 지난 9일 이스라엘군 장갑차가 자국 경계를 넘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안으로 돌진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 Global Focus - 오는 14일 ‘이-하마스 전쟁 100일’ … 이란·레바논도 일촉즉발

이스라엘, 레바논 베이루트 폭격
하마스 서열3위 지도자 사망하자
하마스가 휴전 협상 중단 통보

중동 내 미국 영향력 약해지고
유엔 안보리 휴전 결의도 난항

반이슬람·반유대주의 갈등 확산
글로벌 문화전쟁으로 번질 양상

지난해 10월 7일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이 오는 14일로 100일을 맞는다. 유대인 명절인 초막절 연휴 새벽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이 육·해·공 전력을 총동원한 ‘피의 보복’에 나서면서 속전속결로 끝날 것으로 보였지만 넉 달째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전쟁은 양측이 벌인 제1차 중동전쟁(1948년 5월 15일∼1949년 3월 10일) 이후 가장 긴 전투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휴전 멀어지고 확전 우려만 고조 = 전쟁이 100일을 맞고 있지만 추가 휴전 조짐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양측이 첫 휴전에 합의한 지난해 11월 중순까지만 해도 연내에 전쟁이 종결될 것이란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카타르와 이집트, 미국의 중재 속에 휴전 조건을 조율해오던 양측은 지난 2일 이스라엘의 레바논 베이루트 폭격 이후 협상을 중단했다. 이 공습으로 하마스 전체 서열 3위인 지도자 살레흐 알아루리가 사망하면서 하마스가 휴전 협상 중단을 통보한 것이다. 카타르의 무함마드 빈 압둘라흐만 알사니 총리는 “이스라엘 드론 공격으로 하마스 지도자가 살해되면서 하마스와 휴전 관련해 대화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베이루트 폭격 다음 날 이란 테헤란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는 이번 전쟁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던 이란을 불러들였다. 이란은 국민 영웅으로 평가받는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이란 혁명수비대 정예부대) 사령관 4주기 추모식에서 폭탄이 터져 최소 95명이 사망하고 200명이 넘는 부상자가 발생하자 이스라엘을 배후로 지목하며 ‘강경한 대응’을 천명하고 나섰다.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폭탄 테러 배후를 자처하면서 긴장이 해소되는 듯했지만,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교전 수위가 높아지면서 확전 우려는 다시 고조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대립은 지난 8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헤즈볼라 정예부대의 지휘관이 사망하면서 일촉즉발 사태로 치닫고 있다. 헤즈볼라는 “방아쇠에 손을 얹고 있다”며 이스라엘과 전면전 가능성까지 열어둔 상태다. 헤즈볼라의 최고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이스라엘을 향해 “적이 레바논에 대해 전쟁을 벌이려 한다면 우리는 어떤 제한도, 규칙도, 구속도 없이 싸울 것”이라며 전면전도 불사할 각오를 드러냈다. 한동안 잠잠했던 예멘 후티 반군도 홍해상에서 민간 선박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며 역내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한계 드러난 국제사회 중재력 = 이번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데는 미국의 중동 내 영향력 하락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마스를 상대로 대대적인 지상전을 벌인 지난 2014년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압박하자 전쟁 50일이 되는 날 휴전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선 미국과 여러 차례 불협화음을 내며 국제사회의 휴전 요구도 외면하고 있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변화는 중동 내 미국의 영향력 감소와 힘의 공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에 확전을 막기 위해 중동을 순방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확실한 해법을 가지고 귀국길에 오르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남부와 북부에 대한 전쟁을 지속하겠다”며 레바논과 시리아 지역에서 전투를 이어갈 뜻을 분명히 했다.

국제사회에서 최고 권위를 가진 기구인 유엔도 이번 전쟁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해 비판을 받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이후 휴전 결의안 통과를 위해 수차례 회의를 소집했지만 네 차례 실패 끝에 지난달 중순 ‘긴급한 인도주의적 일시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 한 개를 통과시킨 데 그쳤다. 휴전 촉구 문구는 상임이사국 간 이견으로 포함조차 되지 못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안보리 결의안이 현재 진행 중인 살육과 파괴 앞에 통탄할 정도로 불충분하다고 비판했다.

◇번지는 반유대주의·반이슬람주의, 전 세계 갈등 불씨 =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세계 각지에서 반(反)이슬람·반유대인 정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며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에선 반유대주의 논란이 벌어지며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들이 줄줄이 의회 청문회로 소집됐다. 대학 총장들이 학내에서 불거진 반유대주의에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이유에서다. 청문회에서 이들은 “반유대주의 혐오 발언은 대학 가치에는 어긋나지만, 표현의 자유가 있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놨지만, 이 발언은 반유대주의를 조장한 것으로 해석되며 리즈 매길 펜실베이니아대 총장과 클로딘 게이 하버드대 총장이 사임하는 상황까지 이어졌다. 이 여파가 확산돼 반유대주의와 표현의 자유를 놓고 이념 논쟁으로까지 비화된 상태다.

유럽에서는 테러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에선 하마스와 연루된 용의자들이 유대인 겨냥 테러 모의 혐의로 잇따라 체포돼 성탄 휴가를 앞두고 유럽 내 테러 우려가 고조됐다. 올해 7월 올림픽을 개최하는 프랑스에선 테러 발생을 우려해 센강에서 개막식을 열기로 한 방안을 재검토하고 있다. 영국 런던의 한 팔레스타인 음식점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하루에 20여 건의 협박 전화를 받아 몸살을 앓고 있다고 BBC가 보도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전방위적 글로벌 ‘문화 전쟁(culture war)’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라고 짚었다.

황혜진 기자 best@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