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괴물’ 각본 읽었을 때 나는 쓸 수 없는 이야기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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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괴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관객 50만 돌파 기해 방한
“반목의 시대 예견… 많이 배웠다”

“제가 쓰는 영화의 구성이나 인물, 대사가 비슷해지면서 스스로 질리게 됐어요. 그때 ‘괴물’ 각본을 만났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사진) 정도의 세계적인 감독의 입에서 “내가 쓰는 각본에 질리게 됐다”란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2018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2018)을 비롯해 그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영화는 매번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다.

영화 ‘괴물’의 50만 관객 돌파를 기해 한국을 방문한 고레에다 감독은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투자배급사 NEW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괴물’이란 작품은 ‘내가 썼다면’이란 가정조차 할 수 없다”며 “처음 각본을 읽었을 때부터 이 이야기는 나라는 사람은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는 이 시대의 상황을 예견한 듯한 사카모토 유지의 각본에서 많이 배웠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초등학교 5학년 소년 미나토(구로카와 소야)와 요리(히이라기 히나타)가 겪는 사건을 두고 학부모와 교사, 소년의 엇갈린 관점을 보여주며 진실을 수면 위로 드러낸다. 그러면서 관객 각자가 자신의 ‘괴물’을 서서히 깨닫도록 하는 세련된 각본과 연출이 인상적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사카모토에게서 대본을 받고 3년간 공동으로 각색 작업을 진행했다. 감독의 말마따나 ‘캐치볼’하듯 의견을 교환했던 시간이었다. 그는 “나의 각본은 사변적인 묘사가 겹쳐지며 인물이 드러나고, 이야기가 보이는 방식”이라며 “힘 있는 이야기로 관객을 끌고 나가는 것은 쓰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번 작품이 좋은 공부가 됐다”고 겸손해했다.

관객이 진실을 오인하게끔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전반부는 특히 사카모토 각본의 존재감이 크다. 슈퍼에서 교장이 발을 걸어 여자아이를 넘어뜨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고레에다 감독은 “엄마의 시점에선 교장이 매우 이상하게 보일 것”이라며 “엄마의 정서에 관객도 녹아들길 바라는 의도로 연출했다”고 설명했다.

고레에다 감독은 ‘괴물’이 남과 같길 바라는 평범한 우리 모두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남자답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언어에 남과 똑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있다”며 “미나토와 요리를 궁지로 몰아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가까운 엄마나 선생님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는 두 소년이 기찻길에서 신나게 뛰어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간의 갈등과 폭풍우가 모두 지나고 난 뒤다. 여기에 작고한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 ‘아쿠아’가 흐른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장면을 한 단어로 설명하면 축복”이라며 “류이치가 자신의 딸이 태어났을 때 축복하려고 만든 곡임을 알고 있었고, 그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지난해 11월 개봉해 예술영화로선 고무적으로 50만 관객을 넘겼다. 유독 한국 팬이 많은 고레에다 감독 작품으로서도 최고 흥행작으로 일본 실사 영화 흥행 2위를 기록 중이다.

“이제는 남은 시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됐어요. 일본 밖에서 만들고 싶은 몇 개의 기획이 있는데, 가능한 한 빠르게 한국 배우와 작업할 기회가 또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