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 신뢰 잃어가는 中 당국[뉴스와 시각]

  • 문화일보
  • 입력 2024-02-1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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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우 베이징 특파원

논어(論語) 안연(顔淵)편에 따르면 공자(孔子)는 정치의 근본을 묻는 제자 자공(子貢)에게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 즉, 풍부한 식량(경제), 충분한 군대(국방과 국가의 위엄), 백성의 믿음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공자는 자공에게 이들 중 빼야 하는 순서로 먼저 군대, 다음으로 식량을 꼽았고 백성의 신뢰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했다. 제대로 된 국민의 신뢰 없이 정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1970년대 비림비공(批林批孔) 운동으로 위상이 실추됐던 공자를 집권 이후 부각시키고 나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체제에서 이 구절은 여러 차례 인용되고 있다. 중국 매체들은 지난 2017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대립하던 한국에 공자의 고사를 인용하며 ‘군대를 위해 신뢰를 저버렸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2024년 중국 당국의 정책은 공자가 밝힌 순서와 상반되게 가고 있다. 이달 초 발표된 중앙정치국 회의 발표문은 당의 규율 필요성, 정치적 기반 공고화, 투쟁 정신 유지와 투쟁 역량 강화를 강조했다. 경제가 위축 국면에 들어서고 증시가 폭락하며 인민의 신뢰마저 떨어지는 와중에 당과 국가의 위엄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것이다. 새로운 경제 비전을 제시할 무대인 제20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는 날짜도 잡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의 자국 정부에 대한 불신은 커지고 있다. 최근 주중미국대사관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상하이 증권거래소에 미사일을 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한 유튜버는 자신이 상하이 증권거래소 테러를 계획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경제 회복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중국인들은 지갑을 닫고 씀씀이를 줄이고, 이는 소비 부진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외 전문가들은 중국에 ‘신뢰 회복’을 강조하고 있다. 빌 윈터스 스탠다드차타드 CEO는 “외국 투자자들은 물론 내부 자산가들도 당국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또한 “중국 경제가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내수 비중을 높이는 것을 보고 싶다”며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 신뢰를 높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4% 미만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과감한 개혁을 주문했다. 홍콩 고등법원이 중국 부동산기업 헝다(恒大)에 내린 청산 명령에 대한 중국 당국의 수용 여부는 중국의 대외적 신뢰를 판가름할 중요한 잣대가 될 전망이다. 많은 관계자가 중국이 이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춘제(春節·설) 연휴 이후 실질적 기준금리 인하 등 경기부양책들이 거론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중국 인민과 해외 투자자들이 바라는 신뢰는 중국에서의 사업과 경제 활동에 대한 ‘안정성’의 담보지만, 그 범위가 모호한 반간첩법과 데이터보호법 등을 강화하는 중국 정부를 내·외부의 투자자들은 신뢰하지 못한다. 대중의 믿음이나 경제보다 국가의 위엄을 강조하는 중국의 현 모습은 지난 75년간 자신들이 쌓아놓은 인민의 신뢰라는 공든 탑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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