智·德·體·技… 남녀 프로배구 외국인 감독 ‘4인4색 스타일’ [Leadership]

  • 문화일보
  • 입력 2024-02-19 08:52
  • 업데이트 2024-02-1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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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dership

2005년 출범한 프로배구 V리그는 2023∼2024시즌으로 20번째 시즌을 맞았다. 남자부 4팀, 여자부 5팀으로 출범했던 V리그는 현재 남녀부 모두 7팀으로 규모가 커졌다. 이번 시즌 V리그에서 단연 눈에 띄는 점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외국인 감독이다. 그동안 국내 지도자에게 한정됐던 V리그 감독은 최근 들어 해외 지도자를 향해 문을 열었다. 덕분에 이번 시즌엔 국적과 지도 방식, 성적까지 너무나 다른 4명의 외국인 감독이 보여주는 개성 있는 리더십이 눈길을 끈다.

현재 남자부는 대한항공의 토미 틸리카이넨 감독과 OK금융그룹의 오기노 마사지 감독이, 여자부는 흥국생명의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과 페퍼저축은행의 조 트린지 감독이 활약 중이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핀란드 출신이며 오기노 감독은 일본에서 왔다. 아본단자 감독은 이탈리아 출신, 트린지 감독은 미국 국적이다. 4명의 외국인 지도자 가운데 3시즌째 활약하는 틸리카이넨 감독이 가장 한국 경험이 많다. 아본단자 감독은 두 번째 시즌을 맞았고 오기노 감독과 트린지 감독은 부임 첫해다. 국적도, V리그에서 보낸 시간도 다른 이들 4명의 외국인 감독은 현재 성적도 크게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19일 현재 대한항공과 OK금융그룹이 남자부 1위와 3위, 흥국생명과 페퍼저축은행이 여자부 2위와 7위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대한항공과 흥국생명은 봄 배구 진출이 유력하고 OK금융그룹은 치열하게 플레이오프 경쟁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은 V리그 여자부 최다 연패를 기록하는 등 순위표의 가장 밑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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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항공 틸리카이넨 감독
생각하며… “팀이 전부다”


4명의 지도자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건 대한항공의 틸리카이넨 감독이다. 대한항공은 이번 시즌 V리그 최초 4시즌 연속 통합우승에 도전한다. 통합우승은 정규리그 1위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모두 차지하는 것으로 해당 시즌 가장 뛰어난 전력으로 타 팀을 압도했다는 의미다. 대한항공은 로베르토 산틸리 전 감독 체제로 통합우승을 시작해 틸리카이넨 감독이 통합우승 2회를 추가했다.

틸리카이넨 감독은 1987년생이다. 대한항공의 베테랑 세터 한선수, 유광우(이상 1985년생)보다 나이가 적다. 부상 때문에 한창 선수로 활약해야 할 24세에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한 틸리카이넨 감독은 핀란드와 독일에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지도자로서 꽃을 피운 것은 유럽이 아닌 일본에서다. 이 때문에 유럽과 아시아의 장점만을 취해 철저하게 조직되어 빈틈없는 경기력으로 승부를 내는 배구를 추구한다.

그중에서도 기존 V리그의 승리 방정식이던 높이에 의존하지 않고 점수를 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는 ‘생각하는 배구’를 주문한다. 틸리카이넨 감독과 함께하는 외국인 선수는 공격에 집중하는 V리그 대부분의 외국인 선수와 달리 수비에 가담하는 팀플레이를 주문받는다. 선수 한 명의 높은 성공률보다는 팀 전체의 효율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유럽과 아시아 배구를 두루 경험한 자신처럼 대한항공 선수에게도 다양한 세계 경험을 주문하는 점도 이색적이다. 덕분에 대한항공은 아시아배구연맹 클럽 챔피언십에 출전하고 소속 리베로 송민근을 슬로베니아 리그로 임대하는 등 한국 배구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다양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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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K금융그룹 오기노 감독
헤아리며… “선수에 맞게”


OK금융그룹은 창단 후 10년 동안 김세진 초대 감독에 이어 석진욱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이후 외국인 지도자를 향해 눈을 돌려 오기노 감독을 깜짝 선임했다. 1970년생인 오기노 감독은 현역 시절 일본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일본 남자배구의 간판스타였던 나카가이치 유이치가 공격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수비적인 역할을 했던 날개 공격수였다. 현역 시절 산토리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선수이자 은퇴 후 친정팀의 감독과 프런트로 선수단 안팎에서 오래 활약했다.

오기노 감독의 배구는 철저하게 실리를 추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 위해 OK금융그룹 부임 후 가장 먼저 범실을 줄여야 한다는 점을 선수단에 강조했다. 2022∼2023시즌 OK금융그룹은 세 번째로 많은 929개(36경기 기준)의 범실을 기록했다. 세트당 범실은 6.79개였다. 하지만 오기노 감독 부임 첫해인 2023∼2024시즌은 현재까지 29경기에서 가장 적은 530개로 크게 줄였다. 세트당 범실도 4.82개다.

오기노 감독은 사전 미팅에만 30분을 쓸 정도로 선수 개개인에 맞춘 세부적인 지시를 내린다. 이 때문에 경기 후에도 오기노 감독의 평가는 승패와 별개로 준비했던 훈련, 대비했던 상황에서 얼마나 벗어났는가를 중요시한다. 덕분에 외국인 선수 레오 등 경험 많은 베테랑이 경기 후 코칭스태프의 평가를 스스로 청할 만큼 분위기가 달라졌고 오기노 감독 부임 후 100일도 채 되지 않아 지난해 여름 열린 ‘2023 구미·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에서 깜짝 우승하는 등 빠르게 효과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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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국생명 아본단자 감독
화끈하게… “계속 움직여”


흥국생명의 아본단자 감독은 이번 시즌 V리그에서 활약하는 4명의 외국인 지도자는 물론, 역대 V리그를 거쳐 간 모든 지도자 가운데 가장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1970년생 아본단자 감독은 1996년부터 자국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이탈리아 대표팀 코치에 이어 불가리아와 캐나다, 그리스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이뿐 아니라 라비타 바쿠(아제르바이잔), 페네르바체(튀르키예), 자네티 베르가모(이탈리아) 등 세계적인 수준의 팀도 이끌었다. 특히 페네르바체 시절엔 2013∼2014시즌부터 4시즌 동안 ‘배구여제’ 김연경과 함께 2차례 리그 우승과 유럽배구연맹(CEV)컵 우승 등 뛰어난 성적을 합작했다.

흥국생명도 이 점을 주목해 김연경과 함께 우승을 이끌 지도자로 아본단자 감독을 영입했다. 아본단자 감독은 한국행을 결심한 뒤 그리스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포기했을 만큼 한국행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워낙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지도자인 탓에 국내 선수는 물론, 콧대 높은 외국인 선수도 아본단자 감독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된다. 훈련이 전보다 길어졌어도 긴장감, 집중력은 훨씬 높아졌다는 후문이다.

아본단자 감독의 지도 스타일은 누구보다 화끈하다. 코트 옆 벤치 구역을 쉴 새 없이 오가며 지시한다. 애매한 판정에는 작전지시판을 내던질 만큼 정열적이다.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에는 누구보다 차분해진다. 이런 모습을 아본단자 감독은 스스로 ‘쉬운 남자(Easy Man)’라고 표현한다. 배구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엄격하지만 배구를 벗어나서는 한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대하기 때문이다. 선수들과 적당히 선을 지키며 줄타기를 하는 아본단자 감독의 지도 효과는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도 성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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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퍼저축은행 트린지 감독
세심하게… “영상이 교재”


틸리카이넨 감독과 동갑인 1987년생 트린지 감독은 북미지역에서 주로 활약한 지도자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페퍼저축은행이 선임했던 재미교포 아헨 김 감독이 개인 사정으로 팀을 떠나며 갑작스레 지휘봉을 잡았다. 타 팀 지도자에 비해 이번 시즌을 준비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던 만큼 페퍼저축은행은 현재 여자부 최다 연패 기록을 갈아치우며 최하위에 그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트린지 감독은 패배의 원인을 선수들에게만 돌리지 않는 ‘오빠 리더십’이 돋보인다. 마치 선수들을 대할 때 자신의 딸을 대하듯 온화하고 세세하게 지도한다는 평가다. 물론 트린지 감독도 연패가 길어지고, 훈련에서 강조했던 경기력이 코트 위에서 나오지 않아 종종 흥분하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객관적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다혈질적인 모습을 선수들에게는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점도 ‘오빠 리더십’의 연장으로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외국인 지도자처럼 트린지 감독 역시 비디오 분석을 능숙하게 활용한다. 하지만 트린지 감독은 한술 더 뜬다. 단순히 활용의 차원을 떠나 맹신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만큼 비디오 분석에 정성을 다한다. 대부분의 선수가 프로 경력이 적은 페퍼저축은행이라는 점에서 트린지 감독이 상황별로 제시하는 유명 선수의 경기 영상은 가장 좋은 교과서가 되고 있다. 다만 트린지 감독의 경우 자신의 구상대로 팀을 운영하지 못한 만큼 부진한 성적에 그친 이번 시즌보다는 온전하게 자기만의 색을 입힐 다음 시즌이 더욱 기대를 모은다.

20번째 시즌 치르는 V리그… 총 80명 사령탑 중 외국인은 7명뿐

2010년대 젊은 지도자 선호
4050 국내 리더들 ‘강제 은퇴’
이후 외국인 감독 모시기 시작


V리그는 지난 2005년 출범 후 사실상 국내 지도자의 무대였다. 출범 후 2023∼2024시즌까지 총 20번의 시즌을 거치며 각 팀에 선임됐던 지도자는 총 80명(중복 포함)이다. 하지만 이들 중 외국인 지도자의 수는 7명뿐이다. 남자부가 3명, 여자부는 4명이다. 남자부는 대한항공과 OK금융그룹, 여자부는 흥국생명과 페퍼저축은행만이 외국인 지도자에게 지휘봉을 맡겼을 뿐 나머지 10개 구단은 국내 감독에게만 팀을 이끌도록 했다.

외국인 지도자에게 ‘좁은 문’이었던 V리그지만 2023∼2024시즌은 V리그 출범 이후 가장 많은 외국인 지도자가 활약하고 있다. 이는 한국 배구가 처한 지도자 공백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배구의 지도자 공백은 김세진 한국배구연맹 경기운영본부장이 지난 2013년 당시 39세의 젊은 나이에 남자부 신생팀 러시앤캐시(현 OK금융그룹)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된 이후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김세진 감독과 러시앤캐시는 창단 후 2, 3번째 시즌 만에 당시 최강이던 삼성화재, 현대캐피탈을 연이어 꺾고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해 V리그에 젊은 지도자 시대를 열었다. 이때부터 V리그는 젊은 감독 선임 바람이 크게 불었다. 이 기간 최태웅, 석진욱, 장병철, 김상우, 고희진 등 젊은 지도자가 V리그 감독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10년여의 유행이 지나자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V리그에 불었던 젊은 지도자 선호 현상의 영향으로 당시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의 국내 지도자는 사실상 강제 은퇴해야 했다. 그래서 10년간 유행하던 젊은 지도자 선호 유행이 사그라든 뒤에는 이들을 대신할 지도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다. 베테랑 지도자는 후배들에게 밀려 설 자리를 잃었고,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나이 어린 후배들은 감독직을 맡기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V리그가 그동안 외면하던 해외 지도자에게 더욱 크게 문을 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V리그에서 활약하는 외국인 지도자는 더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현재 V리그에서 활약하는 4명의 외국인 지도자 외에 복수의 팀이 차기 감독으로 해외 지도자를 검토하고 있다. V리그 14개 팀 중 8명의 감독이 계약 만료를 앞둬 재계약 또는 새 감독 선임을 두고 복잡한 계산을 하는 중이다. 이런 가운데 현대캐피탈이 프랑스 출신 세계적인 명장 필리프 블랑 일본대표팀 감독을 선임했다.

오해원 기자 ohwwh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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