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기자의 영화감] 샬라메는 영웅이 아니다… ‘듄: 파트2’

  • 문화일보
  • 입력 2024-02-28 09:09
  • 업데이트 2024-02-2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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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 ‘듄: 파트2’에서 폴(티모테 샬라메)은 프레멘의 ‘마디’(인도된 자)로 추앙받는다. 이것은 그의 운명이었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매주 영화는 개봉하고, 관객들은 영화관에 갈지 고민합니다. 정보는 쏟아지는데, 어떤 얘길 믿을지 막막한 세상에서 영화 담당 기자가 살포시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립니다. ‘그 영화 보러 가, 말아’란 고민에 시사회에서 먼저 감 잡은 기자가 ‘감’ ‘안 감’으로 답을 제안해봅니다.

(10) ‘듄: 파트2’

“동족들이 영웅의 손에 떨어지는 것보다 더 끔찍한 재앙은 없다.”

영화 ‘듄: 파트2’(이하 ‘듄 2’)에서 예언은 이뤄집니다. 하루아침에 가문이 몰살당한 폴 아트레이데스(티모테 샬라메)는 사막 부족 프레멘의 ‘형제’ ‘폴 무앗딥 우슬’로, 다시 과거와 미래를 가로질러 보는 예지력이 생기며 사막 땅의 ‘메시아’로 추앙받습니다. 전능한 힘과 세력을 갖춘 그는 아버지를 죽인 자들에게 복수하고, 은하계 황제 자리에 오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나긴 ‘성전’(성스러운 전쟁)의 시작이 됩니다.

SF소설의 고전 ‘듄’을 원작으로 한 영화 ‘듄 2’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인상적입니다. 첫째, 표면적으론 종교와 신화가 결합한 영웅 이야기이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그리는 모순을 안고 있다는 점. 둘째, 눈을 압도하는 이미지와 귀를 압도하는 사운드를 통해 숭고미를 극대화하며 전형적인 할리우드 상업영화를 탈피했다는 점. 셋째, 방대한 세계관과 복잡한 설정, 심오한 메시지로 ‘반지의 제왕’에 비견되는 ‘듄’을 정보 제공에 허덕이지 않고도 깔끔하게 압축 제시했다는 점. 첫째가 원작의 공이라면, 둘째와 셋째는 ‘각색 1타 강사’ 드니 빌뇌브 감독의 솜씨입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흉측한 빌런 블라디미르 하코넨(스텔란 스카스가드), 페이드 로타(오스틴 버틀러), 그리고 계시를 퍼뜨리는 폴의 어머니 제시카(레베카 페르구손).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웅담이 아니다

‘듄 2’는 영웅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웅이란 운명에 내몰린 한 인간과 세계의 비극에 가깝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폴이 초인적인 능력을 갖고, 복수에 성공하며 황제 자리에 오른다는 줄거리만 보면 전형적인 영웅 서사이지만, 그렇게 보면 감독이 준비한 장면들과 충돌합니다.

폴이 광신자들로부터 지도자로 등극하는 순간, 그는 체념합니다. 그의 표정엔 결말을 아는 자의 따분한 권태와 슬픔이 배어 있죠. 이후 복수에 성공할 때에도, 전 은하계가 그에게 전쟁을 선포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폴이 이미 결말을 봤기 때문이죠. 반복되는 폴의 환상-사막에 죽어 있는 수많은 시체의 모습-은 불행한 미래를 친절하게 예고합니다.

원작자인 프랭크 허버트는 “인간 사회에 내재한 메시아를 향한 욕구를 파헤치기 위해” ‘듄’을 썼다고 했습니다. 소설 ‘듄’에 따르면, 은하계는 ‘한 영웅으로 인해 몸살을 앓게’ 됩니다. 그럼에도 독자들이 폴을 영웅으로 여기자 격분하고 속편 격인 ‘듄의 메시아’를 써서 폴을 은하계를 전쟁으로 몬 반영웅이자 운명의 피해자로 묘사합니다. 폴이 프레멘에게 ‘마디’(인도된 자란 뜻의 아랍어)로 숭배받는 건 그로 인해 전 은하계가 전쟁에 휩싸이고, 폴은 사랑하는 연인 차니(젠데이아)와 헤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폴이 추앙받는 걸 두려워하는 건 이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결국 ‘초인’이 돼 구원자에 목마른 군중들에게 숭배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는 게 아니라 정해진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영웅의 모순. 이 딜레마가 ‘듄’을 지배하는 핵심 가치입니다.

◇“대사가 싫다”는 감독의 무기는?

‘듄 2’만큼 사막을 아름답게 그릴 수 있을까요. 사막 배경 영화의 고전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사막의 거친 풍광을 담았다면, ‘듄’의 사막 아라키스 행성은 모래 바다처럼 반짝입니다. 폴이 ‘모래벌레’를 타는 위험천만한 도전을 할 때도 어쩐지 아늑하게 느껴지는 건 매끈하게 다듬어진 숭고함 덕분입니다.

‘듄2’의 시각적 이미지가 여백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그 여백을 채우며 몰입을 높이는 건 사운드입니다. 영화가 전형적인 블록버스터보다 느리고, 어떤 면에선 명상적임에도 지루하지 않은 것도 사운드 덕분입니다. 카메라가 대상에 조금씩 다가가는 동안 굉음을 내며 관객을 영화의 세계로 잡아끄는 건 감독의 특기입니다. 전편보다 액션 장면이 많아졌다지만, ‘듄 2’는 여전히 정적입니다. 자극에 충실한 상업영화에 길든 관객들이 ‘듄’에 열광하는 기적은 사운드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빌뇌브 감독은 최근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에서) 대화를 싫어한다”며 “순수한 이미지와 사운드가 영화의 힘”이라고 말했습니다.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할 거야”란 폴의 대사보다 클로즈업한 폴의 촉촉한 눈빛을 보여주며 흐르는 유장한 음악이 차니에 대한 폴의 사랑을 더 효과적으로 전달합니다.

폴과 대립하는 빌런 ‘페이드 로타’ 역의 오스틴 버틀러는 이 같은 감독의 미학을 한마디로 정의했습니다. “영화관에서 나보다 훨씬 더 큰 거대한 세계에 들어가는 느낌, 그리고 그 세계에 몰입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각색 1타강사’의 예견된 성공

빌뇌브 감독이 영화화하기 전 ‘듄’은 사실 ‘독이 든 성배’였습니다. 컬트 감독 알레한드로 호도로프스키의 14시간에 달하는 ‘듄’ 영화화 프로젝트는 무산됐고, ‘트윈픽스’ 시리즈의 명감독 데이비드 린치는 패기만만하게 단 한 편으로 원작을 정리하려다 실패했죠. 빌뇌브 감독은 “‘듄’의 이야기는 너무 밀도가 높아 결코 하나의 영화로 만들 수 없었다. 두 편으로 나누는 게 유일한 성공 방법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정보 전달만 해도 숨 가쁠 상황에 때때로 그저 사막 풍광을 보여주는 전략적 여유는 놀랍습니다.

빌뇌브 감독은 사실 각색 전문가입니다. 전작 ‘에너미’(2013)와 ‘컨택트’(2016)는 각각 주제 사라마구와 테드 창의 소설이 원작이고, ‘블레이드 러너 2049’(2017)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원작이죠. 원작의 핵심만 뽑아내고, 이미지와 사운드로 분위기를 조성하며 관객을 영화의 세계로 잡아 이끄는 게 그의 영업비밀입니다. ‘초인’이 될 운명을 타고난 폴처럼, 영화 역시 두 편으로 나눈다는 선택에 이미 영화의 성공이 포함됐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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