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를 낳으셨나요… ‘1943년 3월 4일생’이 더 처연하게 들리는 요즘[주철환의 음악동네]

  • 문화일보
  • 입력 2024-03-04 08:59
  • 업데이트 2024-03-04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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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이용복 ‘1943년 3월 4일생’

“저는 눈에 뵈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독특한 소개에 놀랐는데 음성이 어찌나 온유하던지 순식간에 당혹(當惑)은 고혹(蠱惑)으로 바뀌었다. 비투비의 노래 ‘기타(Stroke of Love)’에 나오는 가사처럼 ‘고혹적인 자태로 뿜어대는 아찔한 음색’의 소유자. 시각장애를 가진 특수교육학과 교수님이셨다.

지난주 월요일(2월 26일) 울산시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경연대회(빛으로 예능제)가 열렸다. 초등학생(주호준 11세)이 기타로 YB(윤도현 밴드)의 ‘나는 나비’를 연주해 대상을 차지했는데 노랫말이 새봄에 썩 어울린다. 봄바람이 불어오면 이젠 나의 꿈을 찾아 날아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시각장애 음악인 가운데 ‘비(Rain)’ ‘그 시절 사랑이 있었지(Once There was a Love)’ 등으로 유명한 호세 펠리시아노(1945년생)가 있다. 레이 찰스(1930∼2004)와 스티비 원더(1950년생)도 빠트릴 수 없다. ‘위 아 더 월드’가 탄생한 1985년 1월 28일 저녁 로스앤젤레스 A&M 스튜디오에서 두 거장의 존재감은 남달랐다. 마이클 잭슨, 밥 딜런 등이 독창·합창을 교차하며 부르는 과정에서 레이 찰스는 ‘우리네 삶을 건질 기회니까(There’s a choice we’re making We’re saving our own lives)’ ‘그대와 내가 함께 더 나은 세상 만드는 게 맞죠(It’s true we’ll make a better day just you and me)’ 부분을 따로 녹음해 완성도를 높였다.

한국엔 그런 분 안 계시나. ‘눈을 감으면 저 멀리서 다가오는’(노래 ‘그 얼굴에 햇살을’ 도입부) 이용복(1952년생). 1970년대에 그는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쫓던’(‘어린 시절’ 원곡 ‘Playground In My Mind’) ‘그리운 고향 두고 낯선 타향을 헤매 돌며’(‘마음은 집시’ 원곡 ‘Il Cuore E Uno Zingro’) ‘누구 하나 나를 찾지도 기다리지도 않소’(‘케 사라’ 원곡 ‘Che Sara’) ‘우리 함께 간다네 푸른 초원 가슴에 안고’(‘우리 함께’ 원곡 ‘Well Be One by Two Today’) 등으로 두터운 팬들을 확보했다. 1972, 1973 연거푸 MBC 10대 가수로 선정될 만큼 지명도가 높았고 각종 예능프로에서도 유쾌한 재담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노래채집가는 오늘(3월 4일)을 기다렸다. 이용복을 소개하기 딱 좋은 날이어서다. 1971년 산레모가요제에서 3위를 한 칸초네 곡이 ‘1943년 3월 4일생’(4 Marzo 1943)인데 원곡 가수 루초 달라의 생년월일이기도 하다. 이 노래를 목화씨처럼 대한민국에 퍼트린 가수가 바로 이용복이다. 번안 가사는 사뭇 비장하다. ‘바람이 휘몰던 어느 날 밤 그 어느 날 밤에 떨어진 꽃잎처럼 나는 태어났다네 내 눈에 보이던 아름다운 세상 잊을 수가 없어 가엾은 어머니 왜 나를 낳으셨나요’ 김묵 감독이 이 가수의 성장 스토리를 영화로 만들었는데 제목이 ‘어머니 왜 날 나셨나요’(1972)다. 1974년에는 조문진 감독이 ‘이용복의 어린 시절’이란 영화를 만들었는데 여기선 주연까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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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비’를 연주한 호준이처럼 이용복도 비슷한 나이에 기타를 손에 잡았다. 1973년엔 연주 독집을 낼 정도로 기타실력을 인정받았다. 51년이 흘렀다. 현실에선 시각장애보다 생각장애(편견)를 가진 이가 많은 듯하다. 2024년 3월 4일에 듣는 ‘1943년 3월 4일생’이 처연하고 숙연하다. 눈을 뜨면 현실이 보이지만 눈을 감으면 진실이 보인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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