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는 문구는 투자자를 정신 차리게 하는 마력을 가진다.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자신이 투자하는 상품에서 ‘원금 손실이 날 수 있다’는 고지를 들으면 투자 여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원금 손실’이라는 말이 가진 힘이다.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와 관련한 금융 당국의 배상안 발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배상안 발표가 임박하면서 고위험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 손실을 과연 금융회사나 정부가 배상해 주는 것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체제에서 맞느냐는 논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상품 설계에 문제가 없는 고위험 상품에 대한 투자 손실을 정부나 금융회사가 배상해 주는 것에 대한 금융 당국의 공식 입장이 나온다는 점에서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홍콩 ELS 사태는 판매 기간이 10년이 넘는 정상적인 금융상품의 판매라는 점, 투자자의 90%가량이 재가입자로 원금 손실 위험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이 짙다는 점 등에서 과거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등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배상 여부 자체가 자본시장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불완전판매에 대한 규명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극히 예외적인 사례를 제외하고 투자자 손실을 보전해 주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자본시장법을 거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금융상품의 투자 손실에 대한 보상이나 배상은 투자자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금융시장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는 요인이다. 이는 곧 외국인 등 투자자의 이탈을 불러오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자본시장 체제에서 ‘투자자의 자기 책임 원칙’은 훼손돼서는 안 될 절대 명제이다. 어쩌면 이것이 홍콩 ELS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논쟁일지 모른다. 정상적인 투자 행위에 대해 투자자들 사이에 “투자 손실이 나도 정부나 금융회사가 보상해 준다”는 잘못된 인식이 자리 잡는 순간 시장경제 원칙은 무너지게 된다.
불완전판매 여부를 가리는 일은 쉽지 않다. 손실을 본 투자자와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을지 모르는 판매자, 그리고 배임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금융회사 모두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투자자와 판매자의 일방적인 주장만 있는 상황에서 금융 당국이 객관적으로 누구의 잘잘못을 가려내 법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상품 설명을 5분 하면 불완전판매이고, 10분 하면 완전판매라고 단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논란이 있지만, 어쨌거나 투자자는 계약서에 본인이 직접 서명했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자기 책임 원칙’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재산을 잃은 투자자도 있을 것이고, 노후자금을 잃은 고령의 피해자도 많을 것이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판매자도 있을 것이다. 금융 당국이 이번 사태에 개입하기로 한 이상 잘잘못을 명확히 점검해 부당하게 손실을 본 투자자들에게는 그에 맞는 배상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자칫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하게 된다면 국가 경제 시스템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금융 당국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야만 한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임대환 경제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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