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고 들수록… 묘하게 끌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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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파묘’ 속 기묘한 장면들… ‘10가지 진실’을 파헤치다

영화 ‘파묘’가 주말 동안 804만 관객을 돌파했다. ‘곡성’(2016·687만)을 넘어서며 한국 오컬트 영화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했다. ‘파묘’가 폭발적으로 흥행하는 데엔 입소문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영화의 각종 설정에 감춰진 정보들이 속속 드러나며 화제를 더하고 있다. ‘파묘’에 파묻힌 사소하면서 중요한 10가지 진실을 등장 순서대로 정리해봤다. ‘파묘’의 10가지 트리비아 혹은 잡학사전이다.

1. 땅을 감별할 때 진짜 흙을 맛보나

풍수사 상덕(최민식)은 무덤 주변의 흙을 맛본 후 말한다. “악지 중의 악지야.” 풍수사들은 실제로 그렇게 할까. 땅의 기운을 읽기 위해 흙을 맛보는 건 실제 풍수사들의 감별법 중 하나다. 흙의 질감과 그 안의 성분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최민식은 “길지면 구수한 맛이 나는데, 흉지는 쇠 맛이 난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그럼 최민식은 실제로 흙을 먹은 걸까. 그건 아니다. 최고급 콩가루로 만든 소품이다. 달달한 걸 좋아하는 배우의 취향이 반영됐다.

2. 영화 속 굿은 실제로 쓰이는 굿인가

영을 읽는 무당 화림(김고은)이 돼지를 잡고, 춤을 추는 ‘대살굿’ 신은 영화 초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조상 귀신을 다시 부르는 ‘혼부르기’와 귀신 들린 봉길(이도현)에게 정보를 알아내는 ‘도깨비놀이’ 역시 흥미를 돋운다. 장재현 감독에 따르면, 모두 실체가 있다. 통상 타살굿이라 불리는 대살굿은 묘를 파낸 인부들을 보호하기 위한 굿으로 화림이 자신의 몸에 칼을 대보는 건 변장이 잘 됐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도깨비놀이는 제주도 지방 굿으로 감독은 애니메이션 ‘배추도사 무도사’에서 영감을 얻었다. 장 감독은 “굿이 이미지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은데, 굿에 확실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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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자 얼굴을 한 뱀의 정체는

파헤친 묫자리에서 나온 뱀을 인부가 죽이면서 후반부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뱀은 일본 설화에 나오는 ‘누레온나’란 요괴로 여성의 머리를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전승에 따라 최대 300m가 되는 긴 몸을 가지고 있는데, 영화 속 누레온나는 크기가 작다. 이 때문에 보통의 뱀이 매장됐던 존재의 악한 기운에 누레온나로 변이됐다는 추측이 나온다. 장 감독은 “‘앞으로 이런 게 나올 거야’라고 방향성을 잡아주는 동시에 사건의 트리거(촉매제)로 기능한다”고 설명했다.

4. ‘첩장’하는 경우가 있나

같은 묫자리에 관을 중첩해 묻는 ‘첩장’도 실체가 있다. 통상 명당에 묻힌 다른 사람의 묘 위에 몰래 암장하는 경우가 많다. 악지에 첩장한 경우는 이례적이기 때문에 극 중 상덕은 크게 놀란다. ‘첩장’은 영화의 서사 구조와 관련이 있다. 장 감독은 “조상 귀신이 묻혀 있던 전반부 이야기는 ‘위장된 관’”이라며 “해결됐다는 안도감을 준 이후, ‘진짜 관’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5. ‘여우’라 불리는 음양사는 누구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리로 한국의 무속이나 토속 신앙에 대한 저서를 남겼던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에게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20여 년간 조선의 의식주, 전통놀이, 종교 등을 조사하며 ‘조선의 귀신’ ‘조선의 풍수’ 등을 남겼다. 영화 속 음양사는 ‘기순애’(여우를 뜻하는 일본어 기쓰네의 우리식 발음), 즉 여우라 불린다. 지준 역시 여우와 인연이 있는데, 그는 구미호를 모시는 신사의 신주였다.

6. 일본 귀신의 정체는

영화에 따르면, 지네 투구를 쓴 일본 귀신 ‘오니’는 임진왜란에 참전했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사망했다. 은어와 참외를 요구했고, 금강경을 외울 정도로 독실한 불교 신자다. 이는 일본 전국시대 무장들의 특징이 합쳐진 것이다. 은어는 오다 노부나가가 좋아했고, 참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즐겼다고 전해진다. 실제 지네 투구를 썼던 다테 시게자네처럼 오니는 영화에서 “전진, 전진!”을 외친다. 독실한 불교 신자란 특징은 가토 기요마사가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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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은어는 주고, 참외는 안 주는 이유

왜 일본 귀신의 미끼로 은어만 쓰고 참외는 쓰지 않았을까. 전술했듯 참외는 이에야스가 즐겨 먹던 과일인데, 이 오니는 세키가하라 전투 때 이에야스의 반대편에 섰던 무장이란 설정을 갖고 있다. 참외를 주면 적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감독은 일본 만화 ‘음양사’를 보고 전국시대 무장이 좋아할 법한 음식을 차용했다.

8. 알고 보면 꼼꼼한 항일 메시지

주인공 ‘김상덕’ ‘고영근’ ‘이화림’ ‘윤봉길’ 모두 독립운동가의 이름이다. 상덕의 차량번호 ‘0815’는 광복절, 화림의 차량번호 ‘0301’은 3·1절, 운구차 번호 ‘1945’는 광복한 해다. 귀신 들린 박지용(김재철)의 집안이 친일파의 후손임도 넌지시 암시된다. 지용의 어머니가 마시는 술은 일본 위스키 ‘히비키’다.

9. 외국 관객은 어떻게 봤을까

‘파묘’는 지난 2월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감독에 따르면, 외국 관객들은 오니를 동양의 뱀파이어 수준으로 받아들이며 즐겼다. 장 감독은 “외국은 극장 분위기가 우리와 달라 소리도 치고 같이 환호한다”며 “새로운 귀신이 나오자 ‘Kill it(죽여), Kill it!’을 연발했다”고 전했다.

10. 변형 오컬트가 된 이유는

장 감독은 코로나19 기간 동안 휑한 극장 풍경을 보며,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파묘’가 깔끔한 오컬트가 아닌 화끈한 지금의 영화로 변모한 이유다. 장 감독은 “일반적인 공포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면 박지용을 주인공으로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호러 마니아들은 실망할 수 있지만, 제 영화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