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 불 질러 관객 몰아넣고 수류탄 투척… 생존자 “움직이는 모든 걸 쐈다”

■ 참혹했던 당시 상황

시신 밟고 공연장 밖으로 뛰어
화장실에 숨은 관객들 질식사

“처음에는 총소리가 콘서트 시작을 알리는 효과음인 줄 알고 박수를 쳤다.”

2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러시아 모스크바 북서부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테러범들이 지난 22일 최대한 많은 희생자를 만들기 위해 비상계단 옆에 불을 지르고 신호를 주고받으며 연쇄 총격을 가했다고 전했다. 이날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은 러시아 유명 밴드 피크닉의 콘서트에 맞춰 6200석의 좌석이 매진된 상태였다. 하지만 공연 시작 5분 전 총성이 들렸다. 현장에 있던 관객들은 콘서트 시작을 알리는 효과음인 줄 알았지만 방탄조끼를 입은 4명의 테러범이 공연장에 들어서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현장에 있었던 타타냐 파라폰토바는 NYT에 “범인들은 움직이는 모든 것을 쏘았기에, 마치 기관총 총구로 내 등을 찌르는 것 같았다”며 “어깨 바로 뒤에서 죽음의 숨결이 느껴졌다”고 전했다. 잇따르는 총격에 공포에 사로잡힌 관객들은 시신을 밟고 공연장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비 출입구는 테러범들에 의해 잠겨 있었고, 또 비상계단 옆에 지른 불로 연기가 자욱했다. 갈 곳이 없어 로비 중앙에 몰린 관객들을 향해 테러범들의 집중 총격이 쏟아졌다. 공연장을 가득 채웠던 관객들의 기대에 찬 함성은 총소리에 얼룩진 신음으로 바뀌었다.

관객들에게 총격을 가한 테러범들은 공연장 커튼과 좌석 등에 인화성 액체를 뿌리고 불을 지른 뒤 수류탄과 소이탄을 투척했다. 그때부터 불길은 공연장 전체에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 이 불로 총격을 피해 화장실과 계단 복도에 숨었던 관객 수십여 명이 질식사한 채 발견됐다. 또 공연장 2개 층이 화재로 전소됐고, 지붕 중 일부는 무너져 내렸다.

러시아 연방 수사위원회는 사망자 중 68구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러시아 당국은 남은 희생자의 신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시신 중 일부는 총격과 화재 등으로 훼손돼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