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탓에 20년 넘게 부르지못했던 ‘동백’… 결국 살아남은 건 노래[주철환의 음악동네]

  • 문화일보
  • 입력 2024-04-01 09:08
  • 업데이트 2024-04-0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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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이미자 ‘동백아가씨’

감옥과 지옥은 주로 마음속에 있다. 그 중간쯤 돼 보이는 정신 사나운 곳에서 추레한 몰골의 노인이 피아노를 친다. 고해성사 받으러 온 젊은 성직자는 졸지에 1인 콘서트의 청중이 된다. “이 음악 아시려나.” 고개를 갸우뚱하자 실망감에 젖은 노인은 다른 곡들을 잇달아 연주한다. 지은 죄도 없이 미안한 표정을 짓던 신부가 드디어 어깨춤을 추며 반색한다. “아, 이 곡 좋아요. 선생님이 이걸 작곡한 분이세요?” 그 순간 젊은이의 환호와 노인의 탄식이 교차한다. 연주자가 나직이 말한다. “그걸 작곡한 녀석은 32년 전(1791)에 세상을 떠났지.” 경쟁자에겐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였던 요절한 천재의 경박한 웃음소리가 극장에 울려 퍼진다.

영화 ‘아마데우스’(1984)의 도입부에 나오는 장면이다. 노인은 한때 요제프 2세의 궁정 음악장이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 화면에선 질투의 화신으로 묘사됐지만 실제로는 창작력과 연주력, 교양을 두루 갖췄다는 게 정설이다. 아쉬운 건 레퍼토리는 많아도 대중적인 히트곡이 없다는 점. 젊은 신부의 몸이 반응한 그 음악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작곡한 세레나데 제13번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G장조 작품 525번이다. 음악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대체로 따라 부를 수 있는 친숙한 멜로디다. 음악사에 남으려면 확실한 히트곡이 몇 개는 있어야 한다.

서양에서 세레나데(소야곡)는 달빛 그윽한 밤 연인의 창가에서 부르던 노래인데 히트곡 부자 가수 남인수(1918∼1962)의 대표곡 중에 유독 이런 제목이 많다. ‘애수의 소야곡’(1938)은 이부풍 작사, 박시춘 작곡이고 ‘추억의 소야곡’(1955)과 ‘이별의 소야곡’(1956)은 둘 다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이다. 오늘의 주제곡 ‘동백 아가씨’(1964)를 만든 히트 콤비가 바로 이 두 사람이다.

명곡탄생 60주년을 맞아 ‘동백 아가씨의 영원한 연인’을 기리는 책이 나왔는데 제목은 ‘가수 이미자’가 아니라 ‘작곡가 백영호’다. 엮은이도 음악평론가가 아니고 백영호의 장남 백경권(진주 서울내과 원장)이다. 부자유친(父子有親) 혹은 사친이효(事親以孝)를 달성할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기록과 아들의 기억이 합쳐졌기 때문이다. 백영호는 15개의 방대한 육성 구술 테이프를 남겼다. 유산분쟁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역사 왜곡을 막으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공명심도 무시할 순 없겠다. 공을 세워 이름을 드러내려는 마음(功名心)과 치우침 없이 공정하고 명백한 마음(公明心)이 3대7 정도 아닐까 싶다. 아들은 어릴 때 아버지와 협업한 가수들(이미자 배호 남진 나훈아 문주란 등) 곁에서 귀동냥한 내용에만 의존하지 않고 관련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도 추가했다. 책에도 나오지만 ‘동백 아가씨’의 연관검색어 중 하나가 금지곡이다. 20년 이상 긴 세월 동안 방송에서 틀지 못했고 공연장에서 부르지 못했다. 그러나 노래와 권력이 다투면 누가 이기겠는가. 힘으로 산을 뽑고 기개가 세상을 덮었던(力拔山兮氣蓋世) 항우를 무너뜨린 건 사면에 울려 퍼진 노래(사면초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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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꽃이다. 2008년생 정서주가 ‘미스트롯3’ 초반에 ‘동백 아가씨’로 심사단을 순식간에 사로잡았고 마침내 우승자가 됐다. 1941년생 이미자도 16세에 KBS ‘노래의 꽃다발’에 출연하여 1위를 차지했다. 새삼 가수의 지구력과 노래의 생명력을 실감한다. 길게 본다면 오디션 입상자들이 유념할 일은 행사에 나가 남의 노래들을 열창하기보다 60년 후에도 살아남을 한 곡의 히트곡을 내는 일이다. ‘이번 공연에선 또 어떤 노래들을 빼고 가지.’ 이미자의 즐거운 고민은 오늘도 현재진행형이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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