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탐욕이 부른 검증 실패… 파렴치 후보 난립으로 민주주의 위기[Deep Read]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 권혁주의 Deep Read - 野 후보 검증 실패, 왜

‘불법 대출’ 양문석· “이대생 성상납” 김준혁 등 불량 후보 줄포진… 1인 사당화·광적 팬덤 문화가 원인
공동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한 정책 골몰 땐 ‘주인-대리인 문제’ 발생… 유권자 날카로운 판단 절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4·10총선이 6일 앞으로 다가왔다. 5∼6일의 사전투표를 고려하면 이미 본격적인 투표가 시작되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선거 막바지에 이르러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과거 막말과 파렴치 행태가 선거판을 혼탁하게 하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에 심하다. 탐욕적 권력욕에 따른 정당 기능 부재, 1인 사당화를 위한 시스템공천 무력화, 광적 팬덤 문화가 그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정치인들이 양산되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주인-대리인 문제’

후보자 자질 논란은 일차적으로 후보자 개인의 부도덕성과 능력 문제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유행했던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말처럼 불공정하고 비민주적인 정당 운영에 그 원인이 있다.

국회의원 선거는 민주주의 꽃인 동시에 아킬레스건이다. 주권자로서 국민은 선거를 통해 자기의 대리인을 선출하고 그에 위임한 권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선거는 대의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과정이다. 그런데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는 유권자의 뜻을 무조건 추종하는 심부름꾼(delegate)이 아니라 이성에 따라 스스로 판단하는 대표자(representative)다. 유권자 개인이나 지역구 집단의 요구에 매몰되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관점에서 바람직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재량권을 가진다.

대표적인 자유민주주의 사상가인 에드먼드 버크는 1774년 영국 브리스틀 유권자에게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국민 여러분의 대표자가 여러분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조건 열심히 일하기가 아니라, 이성에 따라 제대로 판단하기입니다. 만일 그가 자신의 판단을 버리고 여러분의 의견만 추종한다면 그는 여러분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국민의 대표자가 이성적 판단을 통해 국민 전체를 위한 결정을 내릴 때, 비로소 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이들이 국민과 공동체의 이익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결정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는 대의민주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민주주의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삼권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 주기적인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 가능성 등 여러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검증 실패

민주주의 제도 중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정당이다. 기본적으로 정당은 동일한 사상 및 견해의 공유를 토대로 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조직된 정치 결사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정당은 국민과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정치인을 충원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정당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에서 정치인 양성 기능을 수행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첫째, 권력의 획득에만 집착해 올바르고 능력 있는 인재가 아니라 오로지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인물을 공천하는 정당의 탐욕적 행태다.

여야를 막론하고 각 정당은 후보자 공천을 위해 여론조사를 활용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사람을 공천하면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구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받는 사람이 지역구, 더 나아가 국가를 위한 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이라는 보장은 없다.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공익을 희생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단지 그 순간 인기가 높다고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이번 선거에서 거센 논란을 낳고 있는 민주당 후보자들은 주로 여론조사를 통해 경쟁자보다 높은 점수를 받아 후보로 공천됐다. 그러나 양문석(경기 안산갑) 후보는 주택가격 안정을 위해 ‘금융을 강하게 조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면서도 한쪽으로는 불법적으로 받아낸 ‘사업자대출금’으로 서울의 고급 아파트를 구입한 몰염치한 행위가 드러났다. 앞서 갭 투기로 다수 주택을 보유하고 허위로 재산을 신고한 의혹을 받은 이영선(세종갑) 후보 공천은 취소됐다.

◇이유와 배경

같은 당의 김준혁(경기 수원정) 후보는 이화여대 김활란 초대 총장이 미 군정 시기에 학생들을 미군 장교에 성 상납시켰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드러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조국혁신당의 김준형(비례대표 6번) 후보는 국립외교원장 재직 때 한국이 미국에 의해 심리적으로 지배됐다며 한·미관계를 비판했지만, 막상 자신의 자녀 3명은 모두 미국 국적을 선택한 사실이 드러났다. 신뢰할 수 없는 이중적 태도를 가진 사람임이 분명해 보인다.

여론조사에 앞서 각 정당은 사전에 후보자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추론된다. 여기에 두 번째 이유가 존재한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국민의힘은 사무관리가 부실할 수밖에 없다. 반면 민주당은 1년 반 동안 이재명 대표가 당을 장악하고 운영하면서 시스템공천을 위한 제도와 규칙을 구축했고, 그 스스로 시스템공천을 거듭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의 시스템공천은 능력 있는 후보자의 선발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 구축을 위한 전위부대의 선발 역할에 그쳤다. 서울 강북을에 공천을 신청한 박용진 의원은 세 차례 경선에 도전했으나 불합리한 감점, 경선 규칙의 급작스러운 변경 등 불공정하고 비민주적인 경쟁으로 고배를 마셨다. 그 결과 해당 지역구에 거주하지도 않아 자신은 투표할 수도 없는 사람이 공천되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시스템공천이 무력화한 것이다.

후보자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세 번째 이유는 유권자의 투표 행태에 있다. 지난 몇 년간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무조건 지지하는 광적 팬덤과 극렬 지지층이 대폭 증가했다. 전통적인 지역주의 투표 행태와 사회적·정치적 양극화와 결합한 정치적 부족주의와 진영정치가 발호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장래

현재 우리의 선거에서는 그 누가 공천돼도 승리가 사실상 보장되는 ‘텃밭’이라는 지역구가 상당수를 차지하게 됐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지역구는 소수에 불과하다. 정당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합리적이고 능력 있는 후보를 추천하려고 치열하게 노력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채 몰염치하고 파렴치한 후보자들이 그대로 국회의원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할 대표자를 선출하는 유권자의 날카로운 판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용어 설명

‘주인-대리인 문제’ 는 대리인의 도덕적 해이 등으로 주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뜻하는 경제 용어. 정치에서는 대리인(정치인·공무원 등)의 잘못된 언행으로 주인(국민)에게 피해가 발생하는 것.

‘브리스틀’ 은 영국 항구도시. 에드먼드 버크는 1774년 이곳 하원의원 선거에 도전하며 “여러분이 대표를 선출한 순간 그는 브리스틀의 구성원이 아니라 의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라고 연설.

■ 세줄 요약

‘주인-대리인 문제’ : 총선 후보자들의 과거 막말과 파렴치 행태가 선거판을 혼탁하게 해. ‘주인-대리인 문제’는 대의민주주의의 치명적 약점. 국민의 대표자가 건전하고 건강해야 민주주의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게 됨.

검증 실패 : 민주당의 검증 실패는 탐욕적 권력욕에 따른 정당 기능 부재, 1인 사당화와 시스템공천 무력화, 광적 팬덤 문화 등에 원인 있어. ‘부동산 편법 대출’ 양문석, “이대생 性 상납” 발언 김준혁 등이 대표적 사례.

대한민국의 장래 : 정당은 양질의 정치인을 충원하는 기능을 하는 곳. 철저한 검증 없이 몰염치·파렴치 후보자들이 그대로 국회의원이 된다면 대한민국의 장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고, 민주주의의 미래도 장담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