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첩자 ‘경계인의 딜레마’ … “박찬욱의 눈부신 TV시리즈”

  • 문화일보
  • 입력 2024-04-16 09:32
  • 업데이트 2024-04-1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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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혼혈아로 태생적인 이중성을 가진 주인공 대위(왼쪽 사진)는 경계인이자 이중첩자로서 불안정한 삶을 강요받고, CIA 공작원 클로드(오른쪽)는 그런 대위의 약점을 간파하며 필요한 것을 얻어낸다.



■ 박찬욱 OTT 진출작 ‘동조자’… 매주 월요일 쿠팡플레이서 공개

퓰리처상 작가의 동명소설 원작
총 7회… 3회까지 직접 연출 참여

북베트남 첩보원 출신 CIA 동조
위태로운 삶 긴장감 있게 그려
미국 언론들 “올해 최고작”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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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은 늘 딜레마에 놓은 인물을 그렸다. 최근작 ‘헤어질 결심’에서는 피의자를 사랑하게 된 형사가 주인공이었고, ‘박쥐’는 타인의 피를 갈망하는 뱀파이어 성직자의 고뇌를 들여다봤다. ‘올드보이’와 ‘복수는 나의 것’에서는 복수를 행할수록 더욱 침잠하는 인물의 딜레마를 설정했다.

이런 박 감독의 성향을 파악하면 그가 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진출작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명 소설이 원작인 HBO ‘동조자’(The Sympathizer)를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1970년대 남베트남 비밀경찰에 잠입한 북베트남 정보요원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의 주인공 대위(호아 쉬안데 분)는 그의 대사를 빌리자면 “모든 일의 양면을 보는 저주를 받은” 경계인이자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기 때문이다.

15일 공개된 ‘동조자’는 베트콩 재교육 수용소에 갇힌 대위의 독백에서 시작한다. 북측 첩보원인 대위는 남측 비밀경찰이자 이를 지휘하는 장군의 부관으로 일하며 내부 정보를 빼내 북측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동조자’ 1화는 사이공 함락 직전 4개월간 벌어진 일을 그린다. CIA 공작원 클로드(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에게 발탁돼 미국에서 대학원까지 마친 대위는 클로드와 장군의 통역 역할을 하는 동시에 방첩 임무를 맡는다. 장군이 그에게 미국에 동조하는 남베트남의 방식을 가르쳤다면, 클로드는 미국의 문화와 문법을 알려준다. 대위는 그들에게 충성하는 척하지만 북베트남 정보요원인 친구 만(듀이 응우옌 분)의 지령을 받아 내부 정보를 캐낸다. 사이공의 패망이 임박하자 클로드와 장군은 미국으로 떠날 채비를 하고 대위는 남베트남에 남으려 하지만, 만은 미국으로 가 장군을 감시할 것을 권한다. 대위는 거부하지만 “넌 영어로 꿈꾸고, 미국을 사랑한다. 인정하라”는 친구의 말에 반박하지 못한다.

대위는 프랑스인 가톨릭 신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베트남 사람들과는 베트남어로 대화하지만 평소엔 영어로 생각하고 말한다. 스스로 “두 가지 피와 두 가지 언어. 나는 모순의 결합체”라고 말하는 그는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 미국과 손잡은 남베트남을 축출하고 북베트남 중심의 통일을 원하면서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로우 라이더’를 흥얼거리고, 감옥에서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미국 로큰롤 가수 델 섀넌의 ‘런어웨이’에 홀리듯 귀를 기울인다. 부지불식간 미국 문화에 심취한 그의 충성심은 의심받기 충분하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주인공 대위(오른쪽)가 공산 정권인 북베트남의 첩보원으로 신분을 감춘 반면, 그의 절친인 본(왼쪽)은 반공주의자다.



태생적으로 이중성을 가진 대위는 미국으로 건너간 후에도 물 위의 기름 같은 이민자이자 이중간첩으로 산다.

호아 쉬안데는 가족, 민족, 친구, 이념의 칼날 위에서 위험한 작두타기를 하는 대위의 딜레마를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평소 허허실실 행동하면서도 대위의 심리를 꿰뚫고 쥐락펴락하는 냉철한 클로드 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오펜하이머’에 이어 이 작품으로 에미상을 노릴 만하다. 머리숱이 듬성한 반(半)대머리 분장 때문에 자칫 그를 못 알아볼 수도 있다.

주인공을 딜레마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데 일가견이 있는 박 감독은 경계인의 삶을 사는 주인공이 가진 불안감과 위태로움을 긴장감 있게 연출하는 동시에 인장과도 같은 특유의 위트와 웃음 포인트를 곳곳에 심었다. 한국인 이민자 4대에 걸친 설움과 핍박의 역사와 아픔을 보여주는 디아스포라(이민자)를 향한 헌사라 평가받았던 ‘파친코’(2022)의 베트남 버전이라 할 만하다.

총 7회로 국내에서는 OTT 쿠팡플레이를 통해 15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8시 한 편씩 공개된다. 박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해 제작, 각본, 연출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했으며, 3회까지는 직접 연출했다.

지난주 월드 프리미어 이벤트로 공개 후 미국 언론들의 반응은 뜨겁다. 타임 매거진은 “대담하고 야심 차고 눈부신 TV 시리즈”라고 평했고, “올해 HBO의 최고 작품”(인버스), “단연코, ‘동조자’는 클래식이 될 것이다”(콜라이더), “냉소적인 유머를 뚝심 있게 진심 있는 탐구로 완성시켰다”(페이스트 매거진) 등 호평이 이어졌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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