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코·특전사·국대 출신 우희준 “허들 넘을 수 있는지는 해봐야 안다”

  • 연합뉴스
  • 입력 2024-04-22 06:36
  • 업데이트 2024-04-2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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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미스코리아 선, 특전사 복무, 카바디 국가대표 등의 경험을 토대로 에세이집 ‘순간을 산다’(봄빛서원)를 출간하는 우희준(30) 씨가 19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사옥에서 인터뷰 중간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4.22



“도전하면 누구나 성공 가능, 원하는 일 하면 돈은 따라온다”
에세이집 출간…편견 극복하려 남군 기준 ‘특급체력’ 달성


“도전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어요. 성공을 내년에 하느냐, 10년 뒤에 하느냐의 문제에요. 이루어진다는 믿음으로 하면 못할 건 없어요.”

미스코리아 선, 대한민국 여군 소위 최초 특전사 근무, 카바디 국가대표 선수 등 불꽃처럼 도전을 거듭한 우희준(30) 씨는 20대 시절 경험에서 느낀 것을 이렇게 요약했다.

에세이집 ‘순간을 산다’(봄빛서원) 출간을 앞두고 19일 연합뉴스와 만난 우씨는 “어떤 선택을 하든 허들 이미지가 떠올랐다”며 “넘거나 못 넘고 넘어지겠지만 해봐야 아는 것”이라고 지론을 폈다.

그는 학군사관후보생(ROTC)이자 카바디 선수였던 대학시절 미스코리아 선으로 뽑혔다. 후배들이 장난으로 지원서를 대신 내는 바람에 참가했다고 한다. 비인기 종목인 카바디와 편견에 맞서는 여군을 알리는 기회로 삼고 싶었다고 책에서 회고한다.

미스코리아 출신의 연예계 진출이 흔하지만, 우씨는 군인이나 국가 대표가 더 중요했다고 인터뷰에서 강조했다.

“미스코리아로 활동하면서도 훈련이나 운동을 절대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중략) 방송·연예계 활동에 눈이 멀어서 뒷전으로 했다면 아마 임관도 못 하고 금메달도 못 땄을 것입니다.”

카바디 국내선수권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 국제대회 등에서 금메달을 땄다. 겸임이 어려워 중위로 전역하고 출전한 2023년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메달을 얻지 못했다.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전역을 안 했다면 대위로 진급해 중대장을 하고 있겠죠. 하지만 ‘아시안게임에 나갔으면 메달을 딸 수 있었을까’하는 평생 풀리지 않는 찝찝함을 지닌 당당할 수 없는 중대장으로서 남았을 거예요.”

우씨는 “순간순간 부족한 부분들을 채우려고 많이 나갔던 사람”이라고 자신을 규정했다. 고교 시절 스턴트 치어리딩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위를 기록했지만, 외신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것을 계기로 미국 고교로 유학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학비와 생활비는 취업해서 꼭 갚겠다”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아시아 출신자가 거의 없는 학교에서 차별도 겪었지만, 운동을 매개로 ‘인싸’(인사이더)로 거듭났고 시도하면 바뀐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우씨는 18세에 한국관광공사 최초 고졸 신입사원(인턴)으로 입사했고, 또래보다 늦게 대학에 갔다. 장애인 선수들과의 교류를 계기로 의료기기를 만들고자 울산대 공대에서 의공학을 배웠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제복 입은 대학시절의 우희준[울산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군에서는 수색 중대 소대장을 거쳐 여군 소위 최초로 특전사로 발령받았고 통역장교로 레바논 파병 생활도 했다. 여군 소위 특전사 발령은 전례가 없다고 반응하는 담당자에게 “선례가 없다면 지원할 기회를 달라”고 호소한 끝에 뜻을 이뤘다. 하지만 부대 측은 여군과 남군이 같은 텐트에서 숙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등의 이유로 임무를 제한하기도 했다.

그는 “남군들이 기본적으로 하는 것인데 여군이라서 안 되는 것이 많아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부조리를 극복하고자 체력 측정에서 늘 여성이 아닌 남성 기준으로 특급을 달성했다고 한다.

우씨는 퇴역 대신 전역(轉役)했고 지난달에는 예비군 훈련도 받았다. 육군 간부모집 홍보대사와 ROTC 홍보대사, 육군학생군사학교 홍보대사로서 활동하는 등 군과의 연결 고리를 유지하고 있다. 군인 말투가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했더니 “아직 군대 물이 안 빠지긴 했다”며 웃었다.

우씨는 현재는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지식재산학을 공부하고 있다. 군 경험을 살려 경민대 효충사관과에서 겸임교수로 강의하고 기업의 초청을 받아 강연도 한다. ‘운동선수인데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고 싶다’, ‘군인인데 운동선수를 하고 싶다’는 등 문의가 많아 이번 에세이와 강연 등으로 경험을 공유할 계획이다.

원하는 것을 경험하거나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여러 가지를 하다 보니 구체적인 진로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군에 다시 들어가는 게 맞을지 아니면 사회에서 하지 못했던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 보는 게 맞을지 고민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젊은이들이 돈이 되는 분야로 쏠리는 경향이 보이는 것에 관해 우씨는 각자의 선택을 존중한다면서도 “나는 한 번도 어떤 선택을 할 때 ‘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가’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태권도장을 운영하다 경찰로 이직한 아버지의 가르침이 그의 인생관에 큰 영향을 줬다.

“아버지가 항상 그러셨어요. ‘돈은 네가 원하는 일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따라온다’고요. 짧은 삶을 살았지만, 그 말이 맞는다고 믿어요. 40대·50대에도 저는 이렇게 살고 있을 것 같아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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