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존재는 틈과 같은 곳에 숨어 있죠… 그 작은 것 발견해내는 게 사랑의 증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다섯 번째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을 펴낸 박연준 시인. 문학동네 제공

등단 20주년 박연준 시인
5년만에 5번째 시집 출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마음을 위로하는 산문과 소설로 사랑받고 있는 박연준 시인이 5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문학동네·사진)으로 돌아왔다. 올해 등단 20주년을 맞은 그를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위트앤시니컬’에서 열린 새 시집 첫 낭독회 자리에서 만났다.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 며칠째 미동도 않잖아.”／／ 내가 말하자 날아가는 조약돌／／ 돌아와서는／ 아직이요―, 한다’ (‘불사조’ 중에서)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라는 화자의 요청에 돌아오는 대답은 확실치 않다. 죽지는 않았으나 ‘아직’이라는 점에서 유보적이다. 박 시인에게 직접 사랑이 죽었냐고 묻자 그는 “사랑이 정말 죽었을까는 스스로도 늘 물어보는 질문”이라며 “사실 죽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이미 마음 깊이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다시 한 번 모호하게 답했다.

박 시인이 5년 전 내놓은 시집 ‘밤, 비, 뱀’(현대문학)에 수록된 시 ‘하염없는 공책’에서 화자는 ‘사랑이 직업인 사람이 백수가 되면／ 어떻게 되나요’ 하며 물었다. 사랑이 없어지겠느냐는 질문으로 읽힌다. 당시 화자는 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랑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박 시인이 시를 통해 그리는 사랑이 더욱 깊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조약돌’은 어떻게 사랑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까. ‘증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박 시인은 “작은 존재를 발견해내는 것이 사랑의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작은 존재들은 틈과 같은 곳에 숨어 있어 눈여겨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귀 기울여 듣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시집 곳곳에는 ‘작은 사람’ ‘작은 돼지’의 ‘작은 죽음’ 등 여러 작은 존재들이 시인이 발견한 사랑의 증거로 등장한다. 결국 시집 전체가 사랑이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화자는 시 ‘구원’에 이르러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앞으로도 박 시인의 사랑이 결코 죽지 않고 계속될 것을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오랜만에 나온 시집이라는 점 외에도 이번 시집의 특별한 점이 있다. 전작들이 발표 시를 묶어냈던 것과 달리 박 시인은 이번 시집의 절반 가까이 어디에도 공개된 적 없는 미발표 시로 채웠다. “개연성이 중요한 소설과 산문을 마감 기한을 두고 쓰다 보니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시는 청탁받지 않고 ‘은신처’ 삼아 느리고 편하게 썼다”고 그는 설명했다.

박 시인은 시를 쓰는 동안 공책에 특별히 ‘낭독’이라는 두 글자를 적어두었다고 한다. 낭독을 염두에 두고 썼기 때문에 시를 읽으면 그만의 리듬감이 온전히 전해진다. 시를 따라 읽는 독자의 목소리에 박 시인의 박자가 겹쳐지는 순간, 어느새 박연준 시인의 작은 사랑이 걸어올 것이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