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엔 엄격했고 후학엔 다정했던… 올곧았던 ‘법조 선비’ [추모합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010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선규 기자 촬영

■ 추모합니다 -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한국형사법학회 고문·1940~2024)

지난 2022년 12월 고려대에서 열린 한국형사법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 후학들을 밝게 맞아주시던 고문님을 뵙고 너무 반갑고 기뻤던 마음을 아직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일 망연자실한 소식을 접하고, 그때 밝게 웃어주시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는 생각에 슬픈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2000년 3월 국민대 총장으로 취임하시기 전인 2월 어느 날, 국민대 연구실에서 만나 뵌 것이 총장님과 저의 인연의 시작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제가 고문님께 어려운 부탁을 드렸음에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저를 도와주시기 위해 애써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원칙과 소신을 지키시는 올곧음 속에서도 따뜻한 제자 사랑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고문님과 저의 인연은 한국형사법학회로 이어졌습니다. 고문님께서는 1995년 검찰 퇴직 후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로 오신 후 1998년에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과 2000년에 한국형사법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학회발전을 위해 애써주셨습니다. 고문님께서는 당신이 부족함에도 학교와 학계에서 받아줘서 감사하다는 겸손의 말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법조 선비’로 불렸던 정 전 장관(앞줄 가운데)이 2022년 한국형사법학회 동계학회에서 후학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모습. 김혜정 영남대 교수 제공

2001년 한국형사법학회 회장직을 마치시면서 고문님께서는 학계에서 받은 고마움이 많아 보답하고 싶으시다는 말씀과 함께 후학들의 학문적 발전을 위해 학회에 1억 원을 쾌척해주셨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형사법학회는 정암학술상을 만들어 2001년부터 학술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정암학술상은 형사법 관련 학회에서 최초로 만든 학술상으로 다른 학회에 좋은 본보기가 되어 지금은 모든 관련 학회에서 후학들의 학문발전을 위해 학술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2013년에는 당시 한국형사법학회 회장이셨던 박광민 교수님과 재무이사를 맡고 있던 저를 부르셔서 후학들의 학문발전을 위한 학술상은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는 말씀과 함께 다시 한번 1억 원을 쾌척해주셨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2023년까지 총 22명의 형법학자에게 정암학술상이 수여되고 있습니다.

사실 고문님은 실무와 학계를 아우르는 선구자이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검사 시절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구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등의 직을 역임하셨습니다. 1995년 퇴직 이후 학교로 오셔서 후학양성과 함께 1998년 한국형사정책학회 회장, 2000∼2004년 국민대 총장, 2000년 한국형사법학회 회장, 2004년 한국법학원 원장 등을 맡으셨지요. 항상 학회와 후학들에게 애정 어린 관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2004년에 다시 공직의 부름을 받아 부패방지위원회 위원장을 시작으로 2005년 국가청렴위원회 초대위원장, 2007년 법무부 장관, 2017년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헌신하셨습니다.

고문님께서는 ‘법조 선비’로 불리실 만큼 공직생활과 교직생활에서 두루 신망을 쌓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나 뵌 고문님은 학계와 인연을 맺으신 것을 더 기뻐하시고 소중하게 여기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969년 서울대 사법대학원에서 ‘법제와 판례를 중심으로 본 상표권의 보호’라는 주제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시고 1988년 경북대에서 ‘부정경쟁행위론’이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고 다수의 논문을 통해 꾸준한 학문적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2010년 출간하신 ‘법치와 자유’라는 저서는 고문님의 학문적 열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문님께서 항상 원칙과 소신을 지키시는 올곧은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도 학문발전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며 주변의 후학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주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형사법학회 후학들이 이러한 고문님의 발자취를 바라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저희 후학들은 고문님의 뜻을 받들어 앞으로도 한국형사법학계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다 함께 노력하겠사오니 안심하시고, 평안히 영면하시기를 바랍니다.

김혜정(영남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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