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 마크롱’의 경고[오후여담]

  • 문화일보
  • 입력 2024-05-20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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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에마뉘엘 마크롱(46) 프랑스 대통령이 최근 들어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1886∼1944)의 저작 ‘이상한 패배’를 강조하고 있다. 마크롱은 소르본대에서 가진 연설에서 “유럽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전쟁 확대라는 안보 위기 속에 미국·중국에 비해 산업 및 기술이 뒤떨어지면서 경제 쇠퇴 위기까지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2시간여 이어진 연설에서 유럽 상황을 1940년 독일 함락 전야 프랑스와 비교하기도 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도 “블로크의 책을 읽어야 할 때”라면서 “80여 년 전 프랑스 엘리트는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채 현실에 안주하는 바람에 아돌프 히틀러에게 패했는데 지금 유럽이 그런 꼴”이라고 했다.

독일 나치에 총살당한 블로크의 ‘이상한 패배’는 ‘프랑스판 징비록’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프랑스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파를 초월해 애국심을 회복하도록 만드는 국민적 각성제와 같은 책이기도 하다. 마크롱이 이 책을 유럽인들에게 권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3년 차를 맞아 핵전쟁 위협을 공개적으로 얘기하며 전쟁을 확대할 야심을 노골화하는 상황이 제2차 대전기 프랑스와 유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마크롱은 유럽의 치명적 위기 상황 타개를 위해 대미 안보 의존 축소, 유럽연합(EU) 회원국 및 비회원국들이 참여하는 유럽 방위군 창설, 우크라이나 파병론을 제기했다.

유럽이 푸틴의 도발을 패배주의적으로 수용하면 안 된다는 마크롱의 호소에 대해 유럽 각국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프랑스와 함께 EU의 양대 지주인 독일도 냉담하다. 대중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 탓인지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프랑스와 공조보다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 더 신경을 쓰는 기류다.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 카산드라의 경고에 귀를 닫고 있다는 데 유럽의 비극이 있다”고 꼬집었다. 마크롱을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트로이의 여인들’의 예언자 카산드라에 비유한 것이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전쟁 때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가면 화를 당한다고 예언했는데 트로이군이 이를 무시하면서 그리스에 패했다. 2027년 5월 퇴임하는 재선 대통령 마크롱의 유럽 위기 경고가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들어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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