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둔 환자들과 맥주 파티도… 최후 순간까지 ‘살 맛’ 느끼게”[M 인터뷰]

  • 문화일보
  • 입력 2024-05-22 09:34
  • 업데이트 2024-05-2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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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배현정 ‘전진상의원·복지관’ 원장이 21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있는 의원 건물 1층의 약국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 M 인터뷰 - 49년째 봉사 ‘파란눈의 女의사’… 전진상의원 배현정 원장

벨기에 태생 대학서 간호학 전공
26세에 가톨릭단체 통해 한국行

약사·복지사와 팀 봉사활동하다
의사 필요해 중앙대 의대로 편입

의료봉사에 사회 사업까지 함께
환자 몸과 주변환경까지 다 챙겨

1998년부터는 호스피스 활동도
10개 병상 갖춘 전문 센터 발전

환자 마음 편해지면 통증도 줄어
사랑·화해·용서의 시간 보내게


인터뷰=김윤림 전국부 부장 bestman@munhwa.com

“환자는 언제든지 의사를 만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죽는 순간까지 의료사회봉사활동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서 올해로 49년째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진상의원·복지관’(이하 전진상의원)의 배현정(벨기에 이름 마리 헬렌 브라쇠르·78) 원장. 그는 1946년 벨기에 태생으로 26세 때인 1972년 국제가톨릭형제회(AFI) 봉사단을 통해 낯선 한국땅을 처음 밟았다. AFI는 1937년 벨기에에서 창설된 국제적인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단체다. ‘전진상’은 ‘온전한 자아 봉헌(全), 참다운 사랑(眞), 끊임없는 기쁨(常)’이라는 의미로 AFI의 기본정신이다. 배현정이란 이름은 한국에 온 해 크리스마스에 같이 활동하는 단체 사람들이 선물해 줬으며, 성은 ‘배’ 씨로 정했고, 이름 현정(賢貞)은 ‘어질고 곧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2014년 한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법적으로도 배현정이란 이름을 정식으로 사용하게 됐다.

29세 때인 1975년 전진상의원을 설립한 배 원장은 현재 78세로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다, 과거 무릎 부상의 후유증까지 날로 심해져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겹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을 바라보는 환자, 특히 죽음을 앞두고 자신을 찾아온 시한부 환자 곁을 언제나 한결같이 지키고 있는 사람이다.

전진상의원은 지역사회 복지 실현을 위해 의원·복지관·약국·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지역아동센터 등 5개 독립된 기관으로 이루어진 의료사회 복지기관이다. 벨기에에서 간호학을 전공한 배 원장은 한국에 정착하며 어느덧 의사가 됐고, ‘파란눈의 여의사’로 불리며 서민 환자들 곁에 있기 시작했다.

―의료사회봉사지로 한국을 택한 이유가 따로 있나요. 금천구와의 인연도 소개해 주시지요.

“제가 수녀는 아니지만 AFI 소속으로 평생 봉사를 서약했어요. 벨기에에서 입회해 수련을 받는데, 한평생 조금 덜 부유한 나라에 가서 봉사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지요. 처음에는 아프리카나 남미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수련 책임자 중에 한국분이 한 분 계셨어요. 그분이 한국을 제안했습니다. 바로 지금 여기 건물 밑에 있는 약사세요.

한국이 못사는 나라여서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한국이 그때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나라였잖아요. 특히 유럽에서 한국은 무서운 전쟁이 있었던 나라라고 밖에 모르던 때였지요. 한국에 와서는 한국말 배우면서 여기저기 봉사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어요. 그래서 갈 뻔했던 데가 소록도입니다. 거기 갔을 때는 나병 환자가 아직 4000명이나 있었고 거기서 함께하자고 했는데 그즈음 김수환 추기경님이 AFI를 특별히 많이 좋아하셨어요. 어찌하다가 금천과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변두리 판자촌이었어요. 그때 저희 팀은 세 사람이었는데, 지금도 있는 그 약사분하고, 사회사업가 선생님, 그리고 간호사인 제가 있었지요.

매일 같이 동네 꼭대기까지 돌아다녔어요. 제가 하던 일은 결핵 환자들을 발견하고 치료하고, 어린이 예방접종하는 게 주 사업이었어요. 당시에는 연탄가스에 중독된 사람, 뱀한테 물린 사람도 봤어요. 하하. 당시 여기 주민들 대부분이 보건의료 혜택을 못 받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간호사·약사·사회복지사 3명이 팀을 구성하면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중환자들과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는 방문 진료와 무료 진료소를 운영했어요. 돈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에게 치료비와 생계비를 지원해 주고, 무료 유치원과 공부방도 운영했지요.”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배 원장(두 번째 줄 오른쪽 다섯 번째)과 의원 관계자들이 지난 2019년 3월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한 벨기에 필리프(〃네 번째) 국왕 내외, 유성훈(두 번째 줄 왼쪽 네 번째) 금천구청장 등과 함께 기념촬영한 모습. 배현정 원장 제공



―한국에서는 어떻게 의사가 됐나요.

“외부에서 봉사하는 의사들의 지원을 받아 진료 활동을 했지만, 상주 의사 없이는 도저히 안 되겠더군요. 그렇다고 의사한테 줄 월급도 없었고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우리 팀에서 한 사람은 의대에 들어가야 된다’해서 제가 가게 된 거죠. 1981년 중앙대 의대에 편입했지만, 저는 공부가 좋아서 간 건 아니에요. 하하. 그다음에 가톨릭의대에 들어가서 전문의 과정 3년을 거쳤습니다.”

―전진상의원의 봉사활동은 일반 봉사활동과는 다르다고 하던데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저희가 일반 봉사활동이 아닌, 의료사회봉사활동이라고 굳이 표현하는 이유는, 사회사업을 같이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환자가 내원하면 저희는 환자 한 명뿐만 아니라 그 가족이나 환경 등을 모두 포함해서 접근하지요. 전진상의원을 방문하면 처음에는 모두 똑같이 사회사업과 먼저 만나게 됩니다. 거기서는 가계도도 그리게 되고 환자 스스로 말하는 걸 중요하게 듣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거나, 행방불명이다, 혹은 교도소에 있다, 누가 자살했다 이런 얘기들을 모두 듣고, 이 사람한테는 진료 외에 장학금이 필요한지, 아동센터가 필요한지 등을 판단하는 방식입니다. 그야말로 환자의 주변까지 챙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전진상의원은 특히 호스피스 활동으로도 오래된 전문기관이다. 우리나라에 ‘호스피스’라는 개념이 없던 1998년부터 암 환자를 위한 가정 호스피스를 시작했고, 2008년에는 10개의 병상을 갖춘 입원실을 개설하고, 전문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로 인정받았다. 호스피스완화의료란 완치가 불가능한 질병을 앓는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완화시킴으로써 편안하게 지내도록 돌보는 활동이다.

―호스피스 활동에 특히 열중이고, 하실 말씀도 많을 걸로 압니다.

“왕진을 다니면서 당연히 마주치게 되는 것이 죽음을 앞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것만큼은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사람들은 흔히 호스피스는 단순한 일이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통증을 조금 조절하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상당한 지식 없이는 할 수가 없는 게 호스피스예요. 그래서 제가 몇 개월 동안 본국에 들어가서 호스피스 전문 교육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저희는 가정 호스피스와 입원 호스피스로 크게 나누는데, 가정 호스피스의 경우 대부분 말기 암 환자들 집으로 가서 돌보는 것입니다. 전진상의원에는 모두 10명이 입원 가능한 1인 독실로 돼 있고, 가정 호스피스는 여기서 출발해서 20분 안에 갈 수 있는 거리, 멀리는 안 갑니다. 그래서 가정 호스피스는 금천구 안에 있으면 최고로 좋습니다. 저희가 특이한 점은, 환자가 영양제를 안 맞겠다고 하면 그렇게 해주고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피울 수 있도록 하고 어떤 때는 맥주 파티도 합니다. 저희 건물 옥상에 아주 예쁜 테라스가 있어요. 파티가 있는 날은 안주든 뭐든 저희가 다 준비합니다. 저도 맥주를 같이 하고요. 그때 환자분들은 마음으로는 맥주를 먹고 싶어 하지만 막상 준비해 놓으면 많이 못 먹습니다. 한마디로 ‘살맛’을 느끼게 해주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과 그 가족, 대상자는 무조건 환자만이 아니고 지쳐 있는 가족까지도 한 유닛으로 관리가 돼야 양질의 호스피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호스피스)에는 죽으려고 오는 것이 아니고 잘 살기 위해서 오는 겁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환자와 가족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호스피스는 죽음이 아니라 ‘잘 산다는 것’에 초점을 둡니다. 환자들은 가족들과 서로 사랑을 나누고, 화해하고 용서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편안하게 가십니다. 그것을 통해 저희도 삶의 소중함을 배워가게 되지요. 오늘 인터뷰에서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의료수가 현실화 등 경제적 지원은 물론 호스피스 활동에 대해 다각적이고 적극적인 정부와 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신체적·심리적으로 고통받는 환자나 보호자들께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육체적 통증도 그렇지만, 환자분들은 심리적으로도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인데, 마음이 편해지면 사람은 통증이 줄어들게 되지요. 무엇보다 위로가 필요합니다. 입원하는 자체도 많은 위로가 될 수 있죠. 저는 이분들을 항상 ‘전쟁터에서 온 사람들’로 비유합니다. 왜냐면 진단받고 나서는 본인과 가족이 엄청난 실망을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의사로부터 배반당한 것처럼 되기 때문이지요. 전쟁터에서 온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하면 답이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환자가 많으시겠지요.

“제가 호스피스 활동을 하면서 적어도 2000명 이상은 눈을 감게 한 거 같아요. 성심껏 돌봐드렸던 사람들 중 나이가 적은 사람은 어릴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 아들딸로 생각해서 어버이날 찾아오는 어른 된 어린이들도 있습니다. 요새는 항상 어버이날이면 꼭 누군가 꽃을 들고 오더라고요.”

―봉사활동을 거창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자세의 접근이 필요할까요.

“봉사활동은 꼭 자신이 건강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내가 휠체어를 타고 있어도 맹인을 위해서는 책을 읽어줄 수도 있고, 좋은 소리를 녹음해서 들려주는 것도 소리가 그리운 사람한테는 봉사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내가 한 것으로 인해 도움이 되고 그 사람이 나 때문에 달라졌다, 조금이라도 행복해졌다, 이렇게 상대방이 달라지면 내가 제대로 봉사한 겁니다. 효과가 중요할 뿐. 숫자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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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원장은 “활동할 수 있을 때까지 봉사하고 싶다”며 “항상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호스피스 분야를 알리고, 의료진·사회사업가·봉사자 등 후배들을 양성하고 싶다. 후배들과 함께 끝까지 유쾌하게 일하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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