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 향한 편견, 자기 인식까지 왜곡시켜[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문화일보
  • 입력 2024-05-24 09:30
  • 업데이트 2024-05-2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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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세계인의 날

■ 사마천 ‘사기(史記)’

‘골수 중국인’ 사마천 흉노족 얕잡아보는 중국의 관점에 경종

다양성, 일상에 품어 현실 정확히 봐야 생존 위한 큰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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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그야말로 기념하는 달이다. 근로자의 날로 시작하여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부부의 날, 성년의 날 등등 ‘누구누구의 날’이 줄잡아 여덟 개를 웃돈다. 12개월 중 최다다. 그런데 기념하는 날이 많아서인지 ‘세계인의 날’은 그다지 부각되지 못한다. 세계인의 날은 2007년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제정 당시, 유엔이 정한 ‘세계 문화다양성의 날’(5월 21일)이 부부의 날과 중복되어 5월 20일로 정해졌다. 통계에 따르면 외국인 취업자가 올해에는 100만 명을 넘어선다. 다문화가정 학생과 외국에서 태어나 입국한 외국인 학생 수는 지난해 초중고 학생 30명당 1명을 넘어섰다. 외국인 유학생은 20만 명 시대를 앞두고 있다. 다양성, 다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이미 일상이 되었음을 일러주는 지표들이다.

물론 다양성, 다문화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할 수도 있다. 사회에서 일상이 되었다고 그것이 반드시 나의 일상이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이와 관련하여 불세출의 역사서 ‘사기’를 쓴 사마천의 타자에 대한 언급을 참조할 만하다. 다양성, 다문화는 곧 타자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한데, 이는 개인 차원에서도 유의미한 화두이기에 그러하다.

사마천 당시 최대의 타자는 흉노라는 유목민족이었다. 유목민족이라고 하면 왠지 국가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목초지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며 생활하는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그러나 이는 엄청난 편견이다. 그러한 유목민족도 있었지만 사마천 당시 흉노는 적어도 중국의 한 제국에 맞먹는 국력을 갖추고 있었다. 어엿한 유목제국이었던 것이다. 흉노가 한의 건국 초기부터 늘 한의 국가 운영에 상수로 적잖은 영향을 미쳤던 까닭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당대 최고 지성이었던 사마천이 역사를 쓰면서 흉노를 언급 안 할 수 없었다. 그는 흉노와 중국 사이에 있었던 오랜 상호작용의 역사를 기술하는 한편 흉노의 사회와 문화, 풍습 등을 가능한 그들의 관점에서 서술하였다. 또한 흉노의 중항열이란 인물과 한의 사신 간 논쟁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논쟁은 중항열이 일방적으로 한의 사신을 가르치고 훈계하는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가령 한의 사신이 흉노는 왜 젊은이를 중시하고 노인을 천대하느냐고 힐난하자, 중항열은 “흉노는 전투가 생업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사니 당연히 젊고 건장한 사람들 위주로 사회를 운영할 수밖에 없다. 그 덕분에 노인과 젊은이가 오랫동안 서로를 지켜낼 수 있었는데 이를 두고 어찌 흉노가 노인을 홀대한다고 말하겠는가?”라며 면박을 주는 식이었다.

사마천은 중국문화의 수호자로 자처할 만큼 ‘골수’ 중국인이었음에도, 이렇듯 중국의 관점으로 흉노를 바라보는 편견에 경종을 울렸다. 나아가 그는 이를 바탕으로 자신, 곧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을 문제 삼는다.

“세상에서 흉노를 언급하는 자들은 잠깐의 총애라도 얻으려 노심초사하며, 편견에 빠져 흉노와 한의 현실을 참작하지 않았다. 장수들은 중국의 드넓음을 빙자하여 호기를 부렸는데 황제는 그에 의거하여 정책을 결정했다. 그 때문에 공을 세워도 그 효과가 오래가지 못했다.”(흉노열전)

흉노에 대한 편견은 고스란히 자신에 대한 왜곡으로 이어져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기는커녕 과대평가에 빠졌고, 그 결과 흉노 정책이 실패하거나 변변치 못하게 되었다는 지적이다. 편견에 기초한 타자 인식은 이처럼 부정확한 자기 인식을 초래하여 결국 제대로 되는 일이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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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다문화를 나의 일상으로 품어야 하는 필요가 여기에 있다. 그럼으로써 타자를 편견 없이 인식하게 되고 이를 통해 나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함은 기울어진 운동장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더없이 미더운 자산이다. 다양성, 다문화가 나와 전혀 무관할 수 없는 까닭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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