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R&D 예타 폐지” 적실성 있지만… 재정 지속가능 대책도 내놔야[Deep Read]

  • 문화일보
  • 입력 2024-05-27 09:00
  • 업데이트 2024-05-2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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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성진의 Deep Read - 예타 면제와 재정건전성

선도국가형 R&D 예타 폐지, 글로벌 경쟁 속 화두… 재정건전성 훼손·국가부채 증가는 우려점
文정부 때 예타 면제 남발로 국가재정 엉망… 포퓰리즘 지양하며 ‘경직성 지출’ 구조조정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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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연구·개발(R&D)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전면 폐지와 투자 규모의 확대를 지시했다.

R&D 사업 예타 폐지는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는 현실에서 나름 적절성을 갖는다. 하지만 자칫하면 재정건전성을 훼손하고 국가부채를 누적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운다. 미래 세대에 부담을 안겨주는 것을 피하려면 재정의 지속가능성과 재정투자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한 꼼꼼한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재정건전성과 예타

한국 정부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는 국제기관에서도 나왔다. 지난 19일 국제통화기금(IMF)이 37개 선진국의 일반정부부채(D2)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2023년 GDP 대비 D2 비중이 55.2%로 17위였다. 한국은 2015년에 10위였지만, 오는 2029년에는 59.4%로 21위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 발표에 의하면 D2는 2015년 676조2000억 원에서 2022년 1157조 2000억 원으로 연평균 68.7조 원씩 늘어났다. 국가채무(D1)도 2023년도(결산 기준)에는 1126조 원에 달해 2015년 591조5000억 원에 비해 534조5000억 원이 증가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는 한국이 2045년엔 GDP 대비 D2 비율이 100%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저출생·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사회보장 비용이 늘어나는 것을 중요한 원인으로 분석했다. 결국 정부 재정이나 국가부채가 아직은 건전한 편이지만 머잖은 장래가 걱정인 셈이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재정투자 사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전에 시행되는 사업 타당성 조사를 위한 예비 조사이다. 사업자금이 본격적으로 투자되기 이전에 재원 낭비를 방지하고 기대하는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매우 기초 단계이다. 최근엔 재무적인 비용-편익 분석에 그치지 않고 사회·환경적 영향 분석도 추가한다.

한국에서 예타는 1999년 김대중 정부 때 도입됐다. 1997년 말 불어닥친 외환위기 국면에서 공공부문의 개혁을 일궈내기 위한 것이었다. 현재 사회간접자본(SOC)과 R&D 사업에 대한 예타는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면서 국가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국가 주요 사업에 대해 시행된다. 예타 제도의 활성화는 대규모 재정투자 사업에 대한 객관적 타당성 검증을 통해 재정 운용의 남발을 방지함으로써 재정건전성 유지에 공헌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우려되는 부작용

예타 면제가 남발하기 시작한 건 문재인 정부 때부터였다. 문 정부에서 예타를 면제받은 규모는 144건에 105조9000억 원. 이는 이명박 정부 때 61조1000억 원이나 박근혜 정부 때의 25조 원과 비교하면 크게 증가한 것이다.

코로나19 탓이라곤 하나, 결과적으로 예타 면제 남발은 국가부채를 매우 빠르게 증가시켰다. 문 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 말 717조5000억 원이었던 D2는 2021년 말 1066조2000억 원으로 무려 348조7000억 원이나 늘어났다. 문 정부는 2019년엔 ‘국가균형발전’을 내세워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한 사업 32건 가운데 23건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사업으로 채택했다. 이로 인해 24조1000억 원의 예산이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지도 않은 채 일괄 채택됐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부터 부쩍 재정건전성 얘기를 해온 배경에는 예타 제도를 엄격하게 운용해 예산의 낭비를 방지하고 재정투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겠다는 판단이 있었던 것이다. 그 연장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 ‘나눠 먹기식 R&D 예산의 제로베이스 검토’ 발언을 해 4·10총선에서 일부 계층의 반발과 역풍을 만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윤 대통령이 R&D 예타 폐지론을 편 것은 재정건전성 기조를 거스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게 한다.

정부재정 지출은 경직성 지출과 재량적 지출로 구분된다. 경직성 지출 비중이 높아지면 정부의 재량적 예산 편성을 통한 정책 대응 여력이 부족해진다. 박노욱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에 따르면 2023년 정부예산에서 의무·경직성 지출 비중은 80.5%에 이른다. 정부의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만성적으로 이뤄지는 현실에서 정부 재량으로 조절할 수 있는 지출 비중이 적어지는 건 재정건전성에 적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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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투자의 효과성

이번 윤 대통령의 R&D 예타 폐지론을 계기로 모든 재정지출사업에 대한 종합적인 효율화 검토가 필요해졌다. 지난 정부의 대규모 국책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 남발과 함께 이러한 정책이 경제 발전에 효과적인 것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필요하다.

무엇보다 포퓰리즘으로 비판받는 대규모 국책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폐지는 지양돼야 한다. 여야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면제사업 가운데 실질적으로 예타를 통과하기 어려운 사업들이 대부분이다. 예타 통과가 마땅히 되는 사업이라면 면제를 주장할 이유도 없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추진되는 것 가운데 실질적으로는 단순 토건사업에 불과한 것으로 의심받는 국책사업도 적지 않다. 객관적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정치적 영향력으로 재정지출을 강요하면 ‘선심정치(pork barrel politics)’가 일반화할 것이고, 수혜자는 도덕적 해이에 빠질 것이며, 정부예산 낭비 현상은 만연해질 것이다. 지방 국책사업에 대해 지방정부도 재정지출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는 방안 역시 마련돼야 한다.

의무·경직성 지출 자체를 구조조정할 수 있는 관리체계의 마련도 절실하다. 박 연구위원은 ①의무·경직성 지출 총량 관리 ②조정 장치 운용 ③범정부적 지출 구조조정 제도 운용 등을 제시했다.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현금성 지원이 급속히 증가한다는 점을 고려해 개인별 수혜 수준의 총량 한도와 복지지출의 총량 한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부·공공 재원에 의한 R&D 재정사업이 특정 부문이나 계층에 나눠 먹기식으로 배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완전히 가신 것도 아니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연구성과에 대한 사후평가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할 이유다.

◇문제는 운용

윤 대통령의 R&D 사업 예타 폐지론은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는 현실에서 적실성을 갖는 화두가 될 것이다. 문제는 운용이다. 경제성장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 혁신생태계와 관련성은 있는지, 기초과학을 포함한 장기적 과제에 대한 전략적 투자 효과가 얼마나 될지 등을 잘 따져봐야 한다. 부작용에 대한 꼼꼼한 대책이 없다면 재정건전성과 경제적 효율성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어려워진다.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국제경제학회장

■ 용어 설명

‘경직성 지출’은 법령에 의해 지출 근거·요건이 명시돼 정부가 재량적으로 조정이 어려운 지출. 건강·고용·산재보험이나 각종 사회보험 지출 및 인건비·지방교부세·국방비 등이 이에 속함.

‘예비타당성’ 조사란 정부가 대형 투자사업을 하기 전에 경제·사회·환경적 편익이 비용보다 높은지를 판단하는 재무·비재무적 조사. 선진국과 대부분의 국제기구가 재정투자 전에 이를 실시.

■ 세줄 요약

재정건전성과 예타 : 그간 예타 제도는 재정투자 사업에 대한 객관적 타당성 검증을 통해 재정 운용의 남발을 방지함으로써 재정건전성 유지에 공헌함. 그런데 최근 한국 정부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음.

우려되는 부작용 : 원칙 없는 예타 면제나 폐지는 자칫하면 재정건전성을 훼손하고 국가부채를 누적시키는 문제를 낳음. 문재인 정부 때 예타 면제가 남발하면서 국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국가 재정이 엉망이 됨.

재정투자의 효과성 : 윤 대통령이 R&D 예타 폐지를 약속한 건 글로벌 경쟁 속 적실성이 있음. 그러나 재정 지속가능성을 위한 대책도 함께 내놔야 함. 포퓰리즘을 지양하고 경직성 지출을 구조조정할 필요성 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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